78년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던 진주만 참전용사, 워싱턴주에 안장
사회·사건사고
Author
KReporter
Date
2024-09-1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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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중 USS 오클라호마호에서 전사한 1등 해병 랄프 헨리 키일이 9월 11일 수요일, 그의 사망 83년 만에 워싱턴주에 안장됐다.
키일은 타코마에서 성장한 후 올림픽 반도의 포트 갬블로 이주하여 치마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인 지니와 사랑에 빠졌고, 20세가 되기 전 이미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21세 생일을 맞이하지 못했다.
키일의 사망은 그의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촌이자 마지막 남은 친척인 캐시 키일 크로지어는 "그는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계획과 목표가 있었지만, 그것들을 이루지 못했다"며 "그의 죽음은 가족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부모님은 그 후로 달라지셨다"고 말했다.
키일의 유해는 78년간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아들에 대한 최후의 소식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진주만 공격 두 달 후, 키일의 아버지는 해군에 아들의 상태를 문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그가 발견되었는지 안전한지, 아니면 부상을 당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정말 알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크로지어는 그의 부모가 하와이에 가서 그를 반드시 찾아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80년 가까이 아무런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크로지어는 키일의 부모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거의 20년간 노력해왔고,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유해가 마침내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DNA 검사를 통해 오클라호마호에서 회수된 유해가 키일의 것임이 확인된 것이다.
크로지어는 "사촌이 신원이 확인되는 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지만,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고 말했다.
키일의 유해는 월요일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 국기가 덮인 관에 실려 도착했다. 크로지어는 "그가 경사로에서 내려오고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보며, '좋아. 집으로 돌아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사망 83년 후, 랄프 헨리 키일은 타호마 국립묘지에서 추모되었다. 크로지어는 9월 11일을 선택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두 날을 연결하고, 이 나라를 위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른 "평범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이 날짜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83년이 지난 후, 잃어버린 사랑하는 이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크로지어는 "그의 부모를 기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가 항상 있을 곳에 안장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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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KING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