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기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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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엔
기인이랄까, 미친 x 이랄까 할 정도로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던 “걸레 스님, 중광”이란 분이 있었다.
이 분은 위엔 승복을 걸치고 아랫도린 일반 사회인의 바지를 늘 입고 살았다고 한다. (많이 오래 전 그 분의 책에서 본 것임.) 이의 행적을 보면 정상이란 말은 찾기 힘이 들 정도의 이상한 짓거리 투성이었다.
한 예를 보면 공동변소에서 먼저 변을 보고 나오면서 한 사람이 피우던 담배꽁초를
자기의 배변에 꽂아 놓고 나왔는데 그 때 중광 스님이 들어가게 되었다지요.
그래 이 스님이 들어가서 보니 담배꽁초가 모락모락 연기를 피고 있어 보니 제법 꽁초가 길었던 것이라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빼 내어가지고는 앞에 묻은 똥은 옆에서 썩썩 문질러버리곤 그 꽁초를 다시 피웠다는 얘기를 본인이 책에다 올렸답니다. (그 당신 재래식 변소)
또 한 번은 그 분이 미국에 왔는데 어느 도시에서 길을 가다보니 한 화가(?)가 벽에다 사람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보고는 내가 그림 그려준다 하고는 그 화가의 물감 통을 들고는 벽에다 통째로 쏟아 붇고는 그리곤 그 벽에다 자기가 붙어 서 있는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혼자 떠들은 것이지요.)
이에 순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그리곤 팔을 벌리고 벽에 붙어 서 있으니 그 화가가 어이가 없기도 하거니와 옷이니 얼굴 모양도 이상한 아시안이라 말도 통하지 않아 잠간을 멍하니 서 있게 되었답니다.
조금 지나자 물감이 마르려고 하자 이 스님은 벽에서 제 자리로 나왔답니다.
그러자 서서히 그 벽엔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적의 스님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왜 옷은 위는 승복이고 아랫도린 사회복인가?
나는 반은 스님이고 반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시 그게 무슨 말인고 설명을 하여달라고 했더니
승복(평상복)이란 흑도 백도 아닌 색이 바로 승복의 색인데
이는 수도자의 자세가 여기도 저기도 치우치지 말고 바로 보라는 원융사상에 기저를 두고 있다.
본인의 처신이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말고 중도를 지켜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니 이 옷을 입고 있으면 내가 말은 하지 않아도 스님이 되니 나 자신이 여기에 갇혀져 세상일들을 제 삼의 관점에서 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진실로 깨우치려면 어떤 걸림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스님 이란 호칭을 받지 않게 하려면 승복을 벗어던져야 하는 데 아직 깨우침이 덜 한 것도 있지만 어떤 땐 배가 고파 남의 집 문을 두드려야 할 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해서 반은 입고 반은 벗었다고 했다.
그리고 화장실 담배꽁초 얘길 물었다.
냄새가 날 텐데 어떻게 피웠는가 했더니
앞에 묻은 것은 털어버렸으니 조금은 묻어 있어도 타면 냄새를 모르겠더라.
그리고 여기가 변소니 이것이 똥이니 하니 그래서 더럽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냄새는 코로 맡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머리(생각)로 맡게 되니 냄새가 난다.
난 변소가 바로 천당이라 생각하고 있다.
설사 나는 사람한테 물어보라,
변을 보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는데 이 세상에 그 순간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는가.
여기가 바로 천당인데 어디서 찾으려 하는가, 그래서 담배도 피우면서 천천히 나왔다.
사람들은 천당이니 천국이니 하는 개념 자체를 잘 알지 못 하고 있다. 그러니 늘 지옥만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해서 모든 것 집어던져야 바르게 깨우치는 데 이름(스님)이고 옷(승복)이고 조직에 연관 된 걸 쓰고 걸치고 있으면 날 거기에 가둬 놓으려고 한다. 이는 남이 그러는 게 아니고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하게 된다.
해서 스님이란 호칭과 승복은 찰나찰나 흩어려 지려는 수도자로서의 자세를 잡아주는 멍에가 되는 순기능이 원래의 목적이다.
머리는 왜 깍겠는가,
세간의 모든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겠다는 징표가 아닌가.
버릴 수 있는 것도 버리지 못 하면서
진정 깨우치고 싶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나도 사람이라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잘 되진 않는다. 이래서 이래저래 욕을 먹는 짓을 하고 있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는 있으니 노력만 하면 언젠가 되겠지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을 자칭 “걸레 스님”이라 한 것도 세상 사람들이 저질러 더럽혀 놓은 걸 다 쓸고 닦고 갔으면 하는 의도에서 스스로 그렇게 불리어지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아무개 큰 스님, 아무개 목사님 하면서 그들을 칭송하고 경배 하는 경우가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분들일까?
나의 종교적인 자세는 어떤 것일까?
자칫하면 맹신이 과신을 낳고
과신은 자신의 갈 길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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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옛날 책에서 본 걸 기억이 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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