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계(修羅界) : 인간으로 해탈하는 넷째길 - 정진(精進)
육바라밀(六波羅蜜) 중에 지옥· 아귀· 축생의 삼계를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육신과 정신세계라면 수라· 인간· 천상의 삼계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정신과 마음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옥· 아귀· 축생의 존재들은 육신과 생각을 정결케 하는 세계이며 수라계(修羅界)부터는 정신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 수라계(修羅界)에 있는 수행자들은 날마다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수라(修羅)라는 말은 아수라(阿修羅)라는 단어의 준말로 단어의 뜻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라는 말입니다.
아수라(阿修羅)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갑자기 화재나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 출입구를 향해 속히 빠져 나오려고 정신없이 아우성치며 서로 뒤엉켜 몸싸움을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수라(修羅)의 뜻은 이러한 몸싸움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전도된 몽상과 탐·진·치(貪·瞋·癡)로 인해 일어나는 번뇌망상(煩惱妄想)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게 천상을 향해 가는 수행자들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더불어 세상으로부터 오는 각종 유혹과 싸우기 위해 항상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수행자가 이러한 싸움에서 패배하게 되면 파계승(破戒僧)이 되어 속세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 싸움에서 패배한 파계승(破戒僧)들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닦는 수행자들은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욕심과 속세의 미련을 버리기가 힘들고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잘못된 불교의 교리와 제도의 틀 속에서 의식화(意識化)된 고정관념(固定觀念)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더욱 힘든 것입니다. 이렇게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자신의 존재, 즉 이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 쌓아놓은 자신의 존재를 부수고 버리기가 어렵고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라계(修羅界)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길이 바로 정진(精進)입니다. 정진(精進)이라는 단어의 뜻은, “정력을 다하여 나아가는 것, 열심히 노력하는 것, 악을 버리고 선을 닦는 것,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등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진(精進)의 뜻은 모든 생각과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한 생각과 한 마음으로 천상을 향해 전심으로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병원으로 달려가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은 만사를 제쳐놓고 오직 살려는 일념(一念)으로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명이 경각(頃刻)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일이나 약속이 있어도 안중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수라계(修羅界)에 있는 수행자들은 속세의 미련을 모두 버리고 오직 천상을 향해 일심전력(一心專力)으로 정진(精進)하는 자들입니다. 일심전력(一心專力)이라는 말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오직 한 마음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수라계(修羅界)에서 정진(精進)을 하고 있는 수행자들의 소망과 목적은 오직 천상에 올라 부처가 되는 것인데 천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수라계(修羅界)에서 벗어나 인간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수라계를 벗어나려면 그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둠 속을 항해하는 배가 등대의 불빛이 없으면 향방을 모르듯이 무명(無明) 가운데 있는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없으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라계(修羅界)에 머물고 있는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붙잡고 전심을 다해 인간계를 향해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