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게시판

19. 부처님의 생애(生涯)

작성자
친절한상담원
작성일
2014-01-03 08:02
조회
702

19. 부처님의 생애(生涯)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은 불교(佛敎)의 창시자로서 그의 가르침은 무명(無明)의 중생들에게 영원한 빛과 생명이 되어 지금도 어두운 마음을 두루 밝혀 주고 있습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본래 이름은 고타마 싯달타이며 석가모니란 석가족의 성자(聖子)라는 뜻입니다. 고타마 싯달타는 만년설이 덮여있는 히말리야 산맥 남쪽 기슭에 석가족이 살고 있는 카필라 왕국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카필라는 주로 농사를 지어 살고 있는 나라로 싯달타의 아버지는 숫도다나 왕이며 어머니는 마야 왕비입니다.

 

마야왕비는 결혼 한지 2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는데 어느 날 밤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후 아기를 잉태(孕胎)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마야는 산달이 되어 나라의 관습에 따라 해산(解産)을 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라는 동산에서 싯달타를 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경전에 싯달타가 탄생할 때 여러 진기한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머니 태에서 나오자마자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며 오른 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가 모두 편안케 하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진동을 하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천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태자(太子)에게 경배(敬拜)를 하였으며 태자가 걸었던 발자국 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못 속에서 두 마리의 용이 올라와 그 입으로 따뜻한 물을 뿜어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을 씻겨주었다고 합니다.


 


불자들은 태자에게 일어났던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이라 믿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갓 태어나 핏덩어리와 같은 어린 아기가 일어나 걸을 수가 있고, 또한 아무 말도 모르는 갓난아이가 어떻게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경을 보면 태자는 본래부터 부처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중생들과 같은 몸으로 태어나서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야기들은 스님들이 부처님을 미화(美化)시켜 무명의 중생들이 부처님을 믿고 경외(敬畏)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 사료(思料)됩니다. 이렇게 어린 태자가 어미의 태에서 태어난 날은 사월 초팔일인데 불자들은 이날을 부처님이 태어나신 석가(釋迦)탄일(誕日)로 정하여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경축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싯달타)이 태어나신 날은 육신이 어미의 태에서 나온 4월 8일이 아니라 35세에 보리수 나무아래서 성불(成佛)하여 부처가 되신 날을 말합니다. 즉 4월 8일은 태자(싯달타)의 육신이 태어난 생일이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석가(釋迦)탄일(誕日)은 삼십 오세가 되어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해의 12월 8일이라는 말입니다. 부왕 슛도다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왕자의 출생으로 몹시 기뻐하며 자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왕자의 이름을 싯달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마야 왕비는 왕자를 낳은 지 칠일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태자는 왕비의 동생인 마하 파사파제에 의해서 양육(養育)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산 속에서 수행을 하던 아사타 라는 선인이 있었는데 싯달타를 바라보고 이 아이가 장성하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위대한 왕이 될 것이며 만일 출가하여 도를 닦으면 세상의 중생들을 구원하는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豫言)을 하였습니다. 슛도다나 왕은 이 예언을 듣고 처음에는 기뻐하였으나 대를 이을 왕자가 출가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태자는 총명하여 일곱 살 때부터 문무(文武)의 도(道)를 배우고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태자는 어느 해 봄날 부왕을 따라 경운식(耕耘式)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농부들이 밭을 갈고 있을 때 가래에 끌려나온 벌레를 새가 날아와 쪼아 먹는 것을 바라보고 애처로운 마음에 숲으로 들어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얼마 후에 태자는 수레를 몰고 동문(東門) 밖으로 산책을 가게 되었는데 머리가 하얀 노인이 추한 모습으로 쇠약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며 쓰러질 듯이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실의에 빠진 것입니다. 태자는 며칠 후에 남문을 통해서 산책을 나갔는데 길옆에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사람이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열병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바라보고 나도 병들면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한동안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 후 태자는 다시 조용하고 한적한 길을 택하여 산책을 하기로 하고 인적이 드문 서문(西門)으로 나아갔는데 때마침 사람들이 시체를 상여에 메고 자손들은 그 뒤를 따라 곡을 하며 장사지내러 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태자는 태어난 것은 모두 병들고 늙고 죽게 되는구나! 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들과 같이 병들어 신음하고, 추하게 늙어 결국은 죽겠구나! 하는 좌절감에 빠져 고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비록 태자의 신분으로 이 나라의 왕이 될 자이지만 결국은 자신도 병들고 늙고 죽을 수밖에 없는 목숨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궁궐의 부귀영화(富貴榮華)나 자신의 젊음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렇게 태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실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인간 세상에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초월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나 길은 없단 말인가? 또한 자신의 존재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다가 사후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리고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진정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하고 찾아보아도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초월(超越)할 수 있는 길이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좌절(挫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초월하는 영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이 때부터 영생의 길을 찾기 위해 출가(出家)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태자의 마음을 알게 된 부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해보았으나 태자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부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결국 결혼을 시키게 되었는데 그때 나이 19세였습니다. 신부는 태자 어머니의 오라비 데바다하성의 왕인 수프라붓다의 딸 야쇼다라였습니다. 태자는 야쇼다라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이 아들이 자신의 출가를 막는 애물이라 하여 이름도 라훌라라 지은 것입니다.


 


태자는 자신의 출가를 더 미룰 수가 없어 부왕을 찾아갔습니다. 태자는 부왕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출가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태자가 출가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부왕은 기뻐하며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태자가 부왕에게 원하는 것은 왕의 권좌(權座)나 세상의 부귀영화(富貴榮華)가 아니라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왕은 태자의 요구에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왕이라 해도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왕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왕은 태자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물론 자신의 생노병사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태자는 결국 29세가 되던 해에 궁전에서 빠져나와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궁궐을 나와 구도(求道)의 길을 가는 태자에게 마귀가 접근하여 “궁전으로 돌아가라." “이 세상은 모두 네 것이다." “너는 무엇 때문에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생을 하려는가?" 하며 가는 길을 막으려 온갖 미혹(迷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마귀야 물러가라 내가 구하고 찾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富貴榮華)가 아니라 천계(天界)의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며 마귀의 유혹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출가를 한 태자는 이때부터 바리때(밥그릇)를 손에 들고 이집 저집을 떠돌며 구걸(求乞)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궁궐에서 산해진미(山海珍味)의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먹던 태자가 걸식(乞食)하여 얻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집도 절도 없이 영생을 찾아 진리의 도(道)를 구하는 출가자라는 생각을 하고 구걸(求乞)한 밥을 기쁜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태자가 처음으로 찾아간 스승은 비사리국에 고행외도(苦行外道)의 일인자인 “발가바" 선인입니다. 그 선인은 나무껍질과 나무 잎으로 옷을 삼고 음식은 나물과 과일로 하루 한 끼를 먹고 잠은 노천(露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선인은 이렇게 고행을 함으로 미래에는 천계로 올라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태자는 이 선인을 바라보며 장사꾼은 보물을 구하려고 바다에 들어가고 왕은 나라를 구하려고 전쟁을 하지만 선인들은 천계(天界)를 구하려고 이런 고행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이런 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태자는 다시 왕사성 부근 미루산 속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아라 라가라마" 라는 수행자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라가라마는 태자에게 도(道)는 공무변처(空無邊處)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공무변처란 모든 물질의 관념을 초월해 버린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모두 허상이며 오직 공(空)만이 영원한 것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 곧 선정(禪定)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태자는 그의 가르침에도 만족하지 않고 다시 “우가다"라는 선인을 찾아갔습니다. “우가다"는 태자에게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태자는 아(我)가 없다면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가 있을 수 없고 아가 있다면 집착이 일어남으로 해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태자는 이밖에도 여러 선인들의 가르침도 받았고 힘든 고행도 해보았지만 깨우침을 얻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우르빌바"의 숲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홀로 수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태자는 하루에 한 끼 혹은 보름에 한 끼를 먹으며 더위와 추위 그리고 각종 해충(害蟲)들과 마귀들 속에서 정진(精進)을 계속하였습니다. 태자의 몸은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였고 몸 하나 가누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가시방석에 앉는 고행, 불로 몸을 지지는 고행, 물속에 들어가 추위를 견디는 고행(苦行) 등 온갖 수행을 계속하였습니다. 이렇게 태자는 지금까지 어떠한 수행자도 행하지 못했던 고도(高度)의 고행을 참고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육 년이란 세월의 고행 속에서도 깨달음은 얻지 못한 것입니다.


태자는 이러한 고행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력(氣力)을 회복하여 다시 정진하기로 결심을 하고 네란자라 강으로 들어가 더러운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태자는 이때 “우르비라" 촌에서 내려온 “수자타" 여인이 정성으로 공양(供養)하는 “유마”(우유로 만든 죽)를 먹고 점차 기력(氣力)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태자를 따라 함께 수행을 하던 동료들은 태자가 수자타 여인에게 우유죽을 받아먹는 것을 바라보고 태자가 타락했다고 비난을 하며 태자의 곁을 떠나 녹야원으로 모두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태자는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보리수나무에 홀로 앉아 수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태자는 내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살아서는 다시 일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명상에 들어간 것입니다. 태자의 이러한 각오를 알아챈 마왕(魔王)은 각종 귀신들을 동원시켜 방해공작을 하였습니다. 간교(奸巧)하고 아름다운 여자귀신, 흉측하고 두려운 귀신, 세상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주는 귀신,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는 귀신 등을 태자에게 접근시켜 온갖 미혹(迷惑)과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이미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죽음까지 각오를 하고 수행정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왕도 태자의 굳은 마음을 굴복(屈伏)시킬 수 없었습니다. 태자는 결국 모든 고행과 마왕의 시험까지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태자의 나이 35세가 되던 해 12월 8일 새벽 동틀 무렵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신 것입니다. 태자는 출가한지 6년 만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輪回)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해탈(解脫)하여 부처님으로 탄생하시게 된 것입니다. 태자가 출가한지 6년 만에 해탈하여 성불하신 것은 단순한 6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육바라밀(六波羅蜜)의 과정을 화두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해탈은 육바라밀의 수행과정을 통해서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신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일어나 혜안(慧眼)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깨달은 부처가 하늘 위에도 없고 하늘 아래도 없음을 아시고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뜻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자신이 제일 위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깨달은 부처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신이 제일 외롭고 고독(孤獨)하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올바른 뜻과 진정한 석가탄일은 4월 8일이 아니라 12월 8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자가 더러워진 몸을 씻은 네란자라 강은 무엇을 말하며, 태자가 앉아 계셨던 보리수나무는 무엇을 말하며, 또한 수자타 여인이 태자에게 공양한 유마 죽은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태자가 수행을 한 6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 속에 태자가 해탈하여 부처가 되신 화두(話頭)의 비밀이 모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태자가 해탈(解脫)하여 성불하게 되신 화두(話頭)의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자가 몸을 씻은 네란자라 강은 진리의 원천(源泉)을 말하며, 태자가 앉아 참선(參禪)을 하셨던 보리수나무는 지혜의 나무 곧 생불을 말하며, 수자타 여인이 태자에게 공양(供養)한 유마(우유로 만든 죽)는 감로수, 즉 진리의 말씀을 말하며, 태자가 해탈하기까지의 수행기간 6년은 곧 육바라밀(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을 화두(話頭)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자는 네란자라 강과 보리수나무와 수자타 여인이 공양하는 유마 죽과 그리고 6년이란 수행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해탈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태자의 해탈은 네란자라 강(진리의 강)에서 더러운 몸을 씻음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성경에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몸을 씻음)를 받으신 후 하나님의 아들(부처님)로 거듭나는(해탈) 과정과 동일한 사건입니다.


 


이렇게 태자는 자각(自覺)에 의해서 깨달으신 것이 아니라 반야(是大神)에 의해서 반야의 도우심으로 깨달아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반야심경을 통해서 사리자에게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을 하여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혜안(慧眼)이 열려 천상(天上)의 세계를 스스로 보는 부처님을 말합니다. 불자들이 이러한 말씀을 들으시면 경악(驚愕)을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두가 사실이요 진실입니다.


 


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악령(惡靈)을 가지고 있는 마왕(魔王)이나 각종 귀신들은 존재한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상대적인 성령(聖靈)이나 천신(天神)은 부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신(天神)없이는 지신(地神)이 있을 수 없고 성령(거룩한 영)없이는 악령(악한 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천신(하나님)이 없다면 부처도 예수도 있을 수 없고 인간이나 자연만물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태자는 결국 출가한지 6년 만에 보리수나무(지혜의 나무), 곧 반야에 의해서 정각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셨고 태자는 이때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란 태자의 이름이 아니라 석가족의 성자(聖子)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석가모니(釋迦牟尼)라는 이름 이외에도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불타(佛陀), 무상각자(無上覺者), 여래(如來), 석존(釋尊), 세존(世尊)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되신 석가모니는 먼저 자기와 함께 수행을 하다가 떠나간 동료 수행자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셨습니다. 동료 수행자들은 그들을 찾아간 부처님을 파계승(破戒僧)이라 냉대하며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부처님의 빛나는 얼굴과 그의 놀라운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아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동료들에게 설한 말씀은 “사성제(四聖諦)”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는 해탈로 가는 길을 넷으로 나누어 말씀하신 것인데 네길은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를 말합니다.


 


사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에 성제(聖諦)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데 “성제(聖諦)"라고 하는 이유는 무명의 중생들이 성불하여 부처가 되는 길이 바로 사성제(四聖諦) 안에 모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후 그의 동료들에게 최초로 설하신 법문(法門)인데 이 사성제는 지금도 변함없이 무명의 중생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법문(法門)입니다. 부처님은 그 후 “왕사 성"으로 들어가 “빔비사라” 왕을 교화(敎化)한 후 그곳에 법문(法門)을 설하는 근거지를 만들고 열심히 중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부처님의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왔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된 사람은 “사리자"를 비롯해서 약 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왕사성"에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각 지방을 순회하며 45년의 기나긴 세월을 오직 중생을 구제(救濟)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셨습니다. 부처님이 80세가 되시던 해에 “파바"라는 마을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대장간을 하는 “춘다"라는 사람이 공양을 한 음식(돼지고기)을 먹고 배탈이 나셨습니다. 부처님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쿠시나가라" 마을로 가셔서 마지막 설법을 하신 후 숲 속으로 들어가 “샤라" 라는 나무 아래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모든 삶은 자신이 성불(成佛)하기 위해서 온갖 고난을 받으시며 최선을 다하셨고 성불하여 부처가 되신 후에는 중생들을 구제(救濟)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유해(遺骸)는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의 지시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였습니다. 불자들은 부처님의 시신을 화장(火葬)을 하여 타다 남은 유골(遺骨)을 “진신사리(眞身舍利)”라 말합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사리를 서로 취하기 위해서 인도의 각처에 있는 왕들이 몰려와 쟁탈전까지 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부처님의 사리를 여덟 나라에 고루 분배를 하기로 타협한 것입니다.


 


이렇게 분배받은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각기 자기 고국으로 기지고 가서 사찰이나 탑에 봉안(奉安)하여 오늘날 까지 모셔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줌 밖에 안 되는 부처님의 유골(遺骨)은 여덟 나라에 분배되어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어느 사찰에 가보아도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놓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사리가 몇 톤으로 불어났단 말입니까?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진정 무엇이란 말입니까? 불에 타다 남은 부처님의 뼈 몇 조각이 진정 부처님의 사리란 말입니까?


 


부처님의 실체는 부처님의 육신이나 뼈 조각이 아니라 부처님 안에 있던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유골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생전에 중생들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法文)들이 진정한 진신사리(眞身舍利)입니다. 즉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주신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가 “진신사리"이며 성불의 길을 가르쳐주신 반야심경(般若心經)과 금강경(金剛經)이 진정한 “진신사리(眞身舍利)”입니다. 부처님의 타다 남은 뼈 몇 조각이 중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만이 지금도 우리를 해탈(解脫)로 가는 길을 밝혀주며 성불(成佛)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불 속에서 타다 남은 부처님의 뼈 조각들이 아니라 부처님 생전에 불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고귀한 말씀들을 말합니다. 즉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육바라밀(六波羅蜜)이며,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입니다. 그런데 무지한 불자들은 혜안이 없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올바로 보지 못하고 지금도 부처님의 뼈 몇 조각을 모셔놓고 서로 진신사리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임종하시기 직전에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제자들이여! 그대들은 각자 스스로를 등불로 하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하라 남을 의지해서는 안된다. 내 몸을 보고는 그 오예(汚穢: 더러움)를 생각하여 탐(貪)하지 말며 고(苦)도 낙(樂)도 모두가 고(苦)의 인(因)이라고 생각하여 지나치지 말며 내 마음을 관(觀)하고는 그 속에 아(我)가 없음을 생각하여 그것들에게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고(苦)를 끊을 수가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와 같은 가르침을 지킨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진실한 제자이다."


부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너희가 성불을 하려면 내가 가르쳐준 법문(法門) 이외에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말도 믿거나 의지하지 말고 네가 받은 법문만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 노력하고 하십니다. 또한 내 몸(살과 뼈)은 오예(汚穢), 즉 더럽고 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죽더라도 내 몸(遺骨)을 탐내거나 우상(偶像)시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결하고 거룩한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부처님 안에 있는 말씀이지 부처님의 육신(살과 뼈)은 중생들과 같이 더럽고 추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안에 계신 말씀(반야)만이 영원한 생명이며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더러운 유골(遺骨) 때문에 분쟁까지 하며 불에 타다 남은 유골 몇 조각을 절에다 모셔놓고 “진신사리(眞身舍利)" 라고 서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임종하시기 전에 내 더러운 몸을 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까지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스님들은 부처님의 뼈 몇 조각을 절에다 모셔놓고 서로 진신사리라 자랑을 하며 그 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스님들안에 있는 욕심과 탐심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불에 타다 남은 뼈 조각들이 아니라 부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합니다. 즉 오늘날의 진정한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법당(法堂)이나 탑(塔)속에 모셔놓은 사리(舍利)가 아니라 오늘날 살아계신 부처님(生佛)의 입에서 나오는 화두(話頭)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스님들은 부처님의 유골(遺骨)이나 돌부처를 절 당에 모셔 놓으려 하지만 말고 오늘날 살아계신 부처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어지는 부처님의 말씀은 불자들에게 다가오는 괴로움이나 즐거움 즉, 화(禍)나 복(福)도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화(禍)나 복(福)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 윤회(輪廻)하는 “나(自我)”는 “참 나(眞我)”가 아니며 해탈하여 부처가 된 영원한 생명만이 “참 나(眞我)”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유언(遺言)으로 하신 이유는 오늘날 불자들이 거짓 부처나 욕심 많은 패역(悖逆)한 스님들에게 미혹(迷惑)되어 이용당하지 말고 오늘날 살아계신 부처님(生佛)을 찾아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해탈을 하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올바른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지고 무명의 중생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여 미혹(迷惑)된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가 바로 나의 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자들은 이제부터 불교의 교리와 제도의 틀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부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살아계신 생불(生佛)을 찾아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윤회(輪回) 가운데서 벗어나 해탈(解脫)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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