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나 홀로 시애틀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24 00:28
조회
393

함께 여행을 계획했던 캐나다에 살고 있는 미정이는 미국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해 함께 못 가겠단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이미 날짜에 맞추어 숙소를 예약해 놓았기에 혼자라도 가야 했다. 꼭 가 보고 싶은 곳이기에 미룰 수가 없었다.

  미정이가 자세히 알려 준대로 전철을 타고 미국 가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은 난 생 처음이다. 그것도 낯선 외국 땅에서 나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실행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다.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이미 캐나다와 미국 입국 허가서를 받아 놓은 상태였기에 당당하게 대합실로 들어섰다. ‘시애틀’ 행 버스는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였다. 버스에 올라 창가 쪽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버스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 미국에서 캐나다로 여행 왔다 가는 사람들로 보이는 2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조금은 넉넉하게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모두들 약간은 상기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미지의 세계를 맞이하게 될 나의 설레는 마음과 비슷해 보였다.     

  버스는 플랫폼을 미끄러지고 도시 외곽을 벗어나자 넓은 들판을 지나 시애틀을 향해 달려간다.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파노라마 되어 스친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주인공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여행 오기 전 시애틀에 가 볼만한 곳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었다. 프린트해 간 미국 ‘전자여행허가서(ESTA)’를 확인하고, 며느리가 꼼꼼하게 핸드폰에 저장해 준 지도를 보면서 시애틀의 명소를 확인한다. 커피숍 ‘스타벅스’의 본 고장이라니 그곳엔 꼭 가봐야지. 어물시장, 껌 벽, 스페이스 니들, ‘해머링 맨’이 전시된 미술관, 시애틀 성당도 가 보리라.     

  어느덧 버스는 미국 입국장에 도착! 

  승객들이 모두 하차하고 한 줄로 서서 입국 심사를 기다린다. 서너 명의 세관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의 심사가 까다롭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내 가방 안에 ‘ESTA’가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순해 보이는 사람 쪽으로 순서가 되었으면 했다. 백인 승객들은 그래도 쉽게 통과를 하는데, 다소 얼굴색이 누런 사람 중에는 심사대에서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도 있다. 처음엔 당당하게 버티던 나도 점점 순서가 다가오니 죄지은 사람 마냥 약간 긴장이 되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세관원 중 내심 저 사람이었으면 했던 착하게 보이는 세관원 쪽으로 가게 되었다. 다행이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이곳에 왜 왔느냐고 한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기억하기 위해서 왔노라.” 했다. 그 사람도 한국을 조금은 안다고 하고 웃으며 서로 엄지손가락도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세관원이 “얼마짜리 물건을 소유했냐?”라고 묻는 말에, 내가 가진 돈 “어바웃 700불.”이라 대답했다.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세관원이 이 것 저 것을 묻는다. 당황하니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아이 돈트 언더스탠드.”만 연거푸 내뱉고 있다. 드디어 세관원은 버스에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을 향해 ‘Can anyone speak Korean?’라고 묻는다. 아무도 없다. 결국 그 사람은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생각했다. ‘어쩌나?’ 순간 세관원이 놓고 간 서류를 보았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내가 잘 못 해석한 것이다. 세관원의 질문은 ‘얼마짜리 물건을 소지했나?’였다. 700불짜리 물건을 소지했다면 통과를 못하거나 관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세관원은 사무실에 가서 찾아도 한국어 하는 사람이 없어 난처해하고 있었다. 난 세관원을 불렀다.      

  “Hellow! I was mistake." 

  "I want correction!” 

  ”No!"     

  세관원의 얼굴은 금방 환해지고 나도 따라 환해지고 서로 웃으며 통과! 도장 꽝! 검색대에서 가방을 찾아 나오며 뒤를 돌아보니, 함께 타고 온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미 버스에 타고 있었다. 나 때문에 버스가 조금 지체된 것 같아 미안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내가 버스에 오르고 조금 뒤 버스는 출발! 어설픈 영어 실력 탓에 시애틀 입국 불허로 캐나다로 송환될 뻔한 상황이었다.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터미널에 도착한 후 지하철을 타고 예약한 숙소를 찾아갔다. 숙소는 바닷가 근처 유명한 ‘PUBLIC MARKET'과 '스타벅스 원조 집'이 있는 동네였다. 

  지하철 'University Street Station'을 나와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마치 일본 ‘큐슈’ 온천지역 지형을 연상시켰다. 언덕 위에서 아래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내려갔다. 태양은 이미 눈썹만 한 노을을 남기고 검푸른 태평양 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바다 위에 지어진 수상 식당가의 고즈넉한 풍경은 하늘과 맞닿은 태평양 바다 위에 장관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식당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시간을 잡고 낭만에 젖었다. 난 이미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다양한 바닷가 풍경을 경험해봤지만 시애틀의 바닷가 풍경은 누아르 영화 같은 오묘한 감동을 줬다.      

  나 홀로 떠난 시애틀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닷가와 나란히 난 길을 따라 20 여분 헤맨 후 드디어 도착한 숙소는 ‘PUBLIC MARKET'에 인접한 시애틀 중심상가 쪽에 있었다. 시애틀의 명소 ‘PUBLIC MARKET' 앞엔 어물시장을 보려고 몰려온 관광객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간 숙소는 관광 상품 등 잡화를 팔고 있는 상가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들어서니 카운터를 보는 아가씨는 인사하며 웃고는 있었지만 지쳐 보였다. 내게 배정된 방은 2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는 4인실 2층 칸이었다. 1박 2일 짧은 여행이었기에 짐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가방을 메고 침대 2층에 오르려 하니 도저히 다리가 올라가질 않는다. 까딱 잘 못해서 가방만 먼저 올려놨다가는 가방마저 꺼내기 힘들 정도로 2층이 높고 사다리가 직각으로 놓여 있어서 도저히 오를 수가 없다. 반백을 훌쩍 넘긴 내 나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방을 둘러보니 한쪽 침대 아랫칸이 비어있다. ‘그래, 저 쪽으로 바꿔 달라 해야지.’ 카운터 아가씨에게 바꿔 달라 요청을 하니, 이미 예약된 자리라고 안 된단다. “나도 예약하지 않았냐.” “그리고 먼저 오지 않았냐.”라고 했다. 아가씨는 막무가내로 안 된단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얘기했으나 좀체 들어 먹히지가 않는다. 난, “무릎이 아프다.” “허리가 아파서 사다리를 오를 수가 없다.” “옆 침대 아랫칸이 비어있다.”는 둥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를 총동원, 온갖 이유를 대며 아가씨를 설득했다. 큰 소리로 따지기도 하고 다시 차분하게 얘기하기를 반복하며 함께 방으로 가 보자 했다. 결국, 아가씨의 "YES!"를 받아냈다. 우여곡절 끝에 아래층 자리를 잡아 침대 사물함에 소지품을 챙겨 넣은 다음 시애틀 투어에 나섰다. 

  다음 날까지도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껌 벽’을 찾았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처음 시작은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골목 담벼락에 수많은 사람들이 씹다 붙여 놓은 형형색색의 껌들이 위풍당당하게 매달려있다. 쓰레기가 돼도 이미 오래일 것 같은 껌들이 예술의 경지로 승화된 모습이었다. 나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꽤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마감 시간을 놓칠세라 모노레일을 타고 바쁜 걸음으로 시애틀 타워 ‘스페이스 니들’로 갔다. 가는 길에 마주한 시애틀 시내 풍경은 네온사인 불빛 때문이었는지 소박하지만 생기 있고 아름답게 보였다.     

  시애틀은 글로벌 커피 카페 ‘스타벅스’의 원조 도시란다. 바로 그 원조를 찾아 나섰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카페는 줄을 서야 했다. 일단 눈으로 확인했으니, 난 며느리가 알려준 로스팅까지 한다는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객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향긋한 커피 향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넓은 객장 안에는 다양한 나와 같은 사람들, 젊고 예쁜 커플들,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녀들이 저마다 즐거운 표정들이다. 우선, 꽤 웅장한 로스팅 시설을 둘러보고 전시된 커피 머신과 판매되고 있는 생산지가 다른 다양한 원두커피를 구경하며 점원에게 커피 추천을 부탁했다.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물론 점원의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성의 있는 설명이 고마웠다. 선물용으로 추천받은 원두 몇 봉지와 함께 마실 커피를 주문했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객장 안은 이곳을 찾은 다양한 얼굴색과 표정의 사람들로 인해 여행의 설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아늑하고 위치 좋은 나름 멋있어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커피 향에 나를 맡기고 우아한 여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행복했던 기억이 온전히 타국에서 홀로 한 여행이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녔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가슴이 몽글몽글 즐겁다.     

  다음 날, 숙소를 퇴실하기 전 이른 시간에 시애틀 성당을 다녀와야 했다. 여행 중에도 가능하면 그 지역의 성당은 꼭 찾아가 보는 나 나름의 약속대로, 역시 시애틀에서도 성당에 들러야 했다. 지도에 표시해 간 성당을 찾아 시애틀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헤맨 후 드디어 성당을 찾았다. 가는 길 도로변에 구르고 있는 낙엽도, 고가에서 내려다본 자동차들의 바쁜 행렬도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시애틀 사람들의 신앙의 모습을 짐작해 보았다. 각기 다른 방식과 모습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모습이 흥미롭다.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나왔다.     

  시애틀 예술 박물관 앞에서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작품 ‘해머링 맨’을 보았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나라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앞에도 같은 작품이 서 있었다.     

   빡빡한 일정 동안 나름 열심히 적어간 시애틀의 요모조모 관광 상품과 장소를 알뜰하게 돌아보았지만, 1박 2일의 짧은 일정은 시애틀을 가슴 깊이 새기기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낯선 이국 땅 ‘나 홀로 시애틀’ 여행은 내 삶의 한 부분에서 오로지 혼자였기에 더욱더 가슴에 오래 남는, 생각만 해도 날 미소 짓게 하는 행복했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출처: https://brunch.co.kr/@200120001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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