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칼럼

화: 건강한 공격성에서 분노 장애에 이르기까지

작성자
purecore
작성일
2023-06-04 22:49
조회
370

 

  “Beef”라는 드라마가 미국 내에서 큰 주목을 받으면서 여러 평론과 감상들이 잇달았습니다. 그중 NY Times의 James Poniewozik의 비평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는 극 중 Danny Cho(Steven Yeon)의 대사인 “I am so sick of smiling”로 글을 시작합니다. 더 이상 괜찮은 척 웃어야 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Danny는 첫 에피소드부터 좌절감의 극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산하게 되는데, James Poniewozik은 그 분노가 갖는 진실성의 측면, 해방감의 측면을 이야기합니다.

  미국 사회는 발달된 외향적 감정형의 양상을 갖고 있고 또 그런 유형을 이상화합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잘 맺는 감정형, 외향성을 선호하고 언제든 good, nice, excellent, fantastic과 같은 단어로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좋게 표현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패턴화되면 감정의 긍정적 표현이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의 진실된 감정과 접촉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자신을 속이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환경에서 “나는 웃는 것이 지긋지긋해”라고 소리치는 대니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진실된 감정과 분명히 반응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니의 분노는 현실의 암담함과 우울 속에서 극단적으로 과격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극중 인물들 또한 각자의 인생에서 겪었던 좌절감, 억압, 수치심으로 인한 분노를 드러내며 서로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갑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분노가 갖는 진실성을 넘어 분노의 충동성과 파괴성이 많은 것을 해하고 압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분노 혹은 화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어느 정도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고 치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걸까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움직이고 발길질하는 힘,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빨고 깨물고 하는 모든 에너지는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격성입니다. 아기가 기어가고 걷고 뛰게 되는 힘, 주위의 사물을 만져보고 시험해보고 어떠한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도 이러한 건강한 자연적 공격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자발적 공격성이 많이 좌절되면 아이는 위축되고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기 어렵게 됩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자발적 공격성을 외부로 표현하는 시도를 계속 해보게 됩니다. 이때 아이는 외부 상황이나 사람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을 경험하면서 현실의 경계를 배우게 되며 타인의 진짜 상태를 확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두살을 넘긴 아이가 계속 엄마 젖을 물려고 한다면, 물론 아이의 개별적 상태가 고려되어야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시간을 주면서 더 이상은 예전처럼 젖을 먹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아이에게 설명하고 아이의 욕구에 경계를 형성해 줍니다. 이는 아이에게 엄마의 진짜 상태를 알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엄마도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줄 수 만은 없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엄마의 그런 진짜 상태를 아이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성장과정 속에서 부모, 형제, 친구들과 건강한 수준에서 화나 실망감을 표현하고 갈등을 겪을 수 있는 힘은 아이의 인격발달에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갈등 속에서 상대방의 본래의 마음과 태도를 알게 되고, 어디까지 화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 경계를 배우게 되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겪는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화를 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담아두게 되는 것은 우울과 함께 전체 정서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건강한 본능이자 감정으로서의 공격성이나 화를 때맞춰 적절한 수준에서 표현하고, 이를 다른 사람과 해소하지 못한다면 분노는 마음 속에 거대한 폭발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사소한 일에 거대한 분노를 내는 상황이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큰 충격,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는 정신이 커다란 스트레스와 위협에 시달리게 되므로 작은 자극에도 강하게 불안해하거나 분노를 터뜨리게 될 수 있습니다.그리고 분노 장애--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의 수준에 이르면 분노 발작,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행까지 행사하며, 스스로도 반복적 폭발 행동으로 인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민자로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사회에서 소통하고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좌절감이 분노가 되어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장들, 남성의 경우에 이민 사회에서 경험하는 한계와 상실감이 분노를 부추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찾지 못한다면 이러한 분노는 가족에게 표출될 확률이 커집니다. “Beef”라는 작품에서 아시아계인 극중 인물들의 분노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이민 가족의 삶과 관련된 이유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현상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것,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분노 그 이면에 어떤 감정이나 트라우마가 자리잡고서 분노를 극대화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자신의 삶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노 장애와 같은 경우는 혼자서 조절하기 쉽지 않은 폭발성과 충동성을 가지므로 꼭 전문적 도움을 받으면서 치료적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Drsue.net

intinst.edu@gmail.com

720.207.8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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