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AI 전쟁중
세계는 지금 실리콘과 알고리즘 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무기는 더 이상 탱크나 전투기만이 아니다.
오늘날의 전쟁터는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신경망이다. 바야흐로 'AI 전쟁'이라 불러야 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그 무대 중 하나가 올해 10월 말 ~ 11월 초 대한민국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2025 Korea 정상회의였다. 한국은 ‘연결·혁신·번영(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 Connect, Innovate, Prosper)’을 기조로 삼았고, 그 중에서도 ‘혁신’—특히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자리에서 글로벌 반도체·AI 기업 NVIDIA와 한국 정부, 그리고 국내 대기업들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술 제휴가 아닌 국가 전략의 전환을 뜻한다.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이 NVIDIA의 발표다. 이 회사는 한국 정부 및 국내 기업들과 함께 향후 수십만 개의 GPU를 한국 내 AI 인프라에 투입할 것을 공식화했다.
구체적으로는 약 26만 여개의 최신 GPU가 한국의 ‘주권형 인공지능(sovereign AI)’ 인프라 구축에 활용될 예정이다.
한국 정부 및 기업들은 이 인프라 위에 AI 팩토리, 제조업 AI, 자동차·자율주행 AI, 클라우드·데이터센터 AI 등을 얹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이것은 단순히 ‘AI 기기 늘리는’ 이슈가 아니다. 한 국가가 ‘지능 인프라’를 물리적 반도체 생산처럼 전략자산으로 인식하고,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선언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이 AI 전쟁의 전장 한복판에 스스로를 배치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이 왜 이 무대에 올랐고, 어떤 조건을 갖췄는가? 우선 반도체·제조업 강국이라는 기본 토대가 있다. 삼성·SK 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자동차, 통신, 디스플레이 등 산업 밸류체인의 핵심을 보유해 왔다.
NVIDIA 발표자료에서도 한국이 “제조와 소프트웨어, AI 기술을 결합할 기회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한 경주 APEC 회의를 통해 한국은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는 국가가 아니라, 기술 규범·협력의 장을 주도하려는 ‘미들파워’로서의 외교·경제 전략을 펼쳤다.
예컨대 이번 APEC에서 발표된 ‘APEC AI 이니셔티브’(2026-2030) 논의는 미·중 양국을 모두 아우르는 틀을 제시했으며, 한국은 그 중심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며 기술·무역·안보를 잇는 새로운 실리 외교의 전선을 개척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AI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리적인 인프라 구축, 글로벌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기술 외교의 주도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한국이 기술경쟁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의 AI 전장은 단지 기술기업의 싸움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AI를 경제·군사·산업 패권의 핵심축으로 인식하며 국가 전략의 무기로 삼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클라우드 인프라, 민간 혁신생태계에 강점을 지니고 있고, 중국은 개방형 모델과 빠른 응용, 국가 주도 인프라 정비로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
이 경쟁은 누가 먼저 모델을 만들고 발표하느냐보다 누가 데이터를 확보하고 알고리즘을 산업과 일상에 적용하며 인재를 키워나가느냐의 싸움이다. 결국 우리나라가 이 전장 속에서 주도적 입지를 차지하려면, 단순히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이 두 강국이 벌이는 전략의 흐름을 이해하고 연계해야 한다.
그러나 AI 전쟁의 승자는 단지 하드웨어나 인프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데이터·알고리즘·인력·윤리·규범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AI가 산업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안보·경제의 틀을 바꾸는 지금, 한국이 갖춰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첫째, 대량 인공지능용 반도체를 확보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모델을 개발하고 서비스로 연결하며, 산업 전반에서 실제 성과를 내야 한다.
둘째, AI가 가져올 변화 속에서 인력·교육체계가 뒤처지면 ‘강국’ 조명이 무색해질 수 있다. AI 전쟁에선 지식과 인재가 핵심 무기다. 셋째, 글로벌 기술 경쟁이 곧 지정학 경쟁으로 번지는 시대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기술안보·산업안보·데이터안보까지 고려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싸움에 ‘응원석’은 없다는 점이다. 칸막이 없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자는 더 많고, 변화의 속도는 더 빠르다. AI 전쟁에서는 뒤처지면 순식간에 낙오된다. 한국이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은 칭찬거리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 APEC에서 펼쳐진 NVIDIA와의 협업, 그리고 한국 정부의 전략 선언은 ‘진입선’을 넘었다는 신호다. 이제 남은 것은 전선을 확대하고, 기술과 산업·사회를 함께 바꿔나가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AI의 물결 속에서 패권을 다투고 있다. 그 중심에서 한국은 단지 따라가는 국가가 아니라, 한 축이 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이 전쟁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방어하거나, 혹은 주도하되 멈추지 않는 것이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