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왜 다시 공자인가?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0-25 13:04
조회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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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7월 12일, 프로이센 제국의 할레 대학에서 한 사건이 벌어졌다. 총장 이임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총장직을 물러나는 철학자 볼프가 폭탄 발언을 했다. 공자를 예수와 동급으로 둔 것이다.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허한 명예욕에 유혹당하지 않고 백성의 행복과 복리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기의 재능을 전적으로 발휘했습니다. 공자는 단순히 스승이라는 직책을 수행했다기보다 그 직책에 영광을 부여한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받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중국인들에게 받습니다. 중국의 옛 황제들과 제후들은 정치가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는데 철학자들이 다스리고 제후들이 철학하는 곳에서 국민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중국의 오제(伍帝)는 플라톤이 말한 이상적인 철인(哲人)정치가들입니다.” 볼프는 공자철학을 그리스철학과도 비교했다. 그러면서 공자철학의 우월성을 찬양했다.

볼프는 이 발언으로 프로이센에서 추방당했다. 그런데 추방 소식이 유럽에 퍼져나가자 뜻밖의 반응이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그를 초빙하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신학적인 논쟁은 접어놓고 일단 계몽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볼프를 ‘이성의 대의를 위한 순교자’로 추앙하기 시작했다.

 

공자 및 중국의 사상이 유럽에 끼친 영향력

공자 및 중국의 사상이 유럽에 끼친 영향력을 시대적으로 살펴본다. 영국에 명예혁명이 일어난 1688년을 기점으로 해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 기간까지 살펴본다. 1697년에 라이프니츠는 유럽에서 기독교 선교사를 중국에 파견할 게 아니라 중국에서 공자 선교사를 유럽에 파견할 것을 요청한다. 1721년엔 앞서 언급한 볼프 사건이 발생. 1748년 동양 비방의 대가 몽테스키외와 공자 예찬론자인 볼테르의 치열한 논쟁이 프랑스를 달구다. 1758년 유럽의 공자로 불리는 케네가 중국을 모델로 근대경제학을 창시하다. 1771년 스위스는 ‘무위이치(無爲而治)’를 바탕으로 유럽 최빈국에서 지상낙원으로 바뀐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사마천의 ‘자연지험(自然之驗)’에서 표절하다.

“공자(孔子)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고?” 서구맹종주의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그런데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책엔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많은 실증 사료와 동서 간의 흥미진진한 철학교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료에 따르면 동아시아 경제는 18세기까지 줄곧 세계최강이었다. 중국은 제국주의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문명국이었고, 영. 정조 시대 조선은 중국을 능가한 세계 1위 문화국가였다. 그랬던 동아시아가 어째서 개화기의 이른바 동서 문명교체기에 서구 열강에 참패를 당하고 서구 콤플렉스의 깊은 늪에 빠지게 되었는가?

“공자는 어떤 종교도 가르치지 않았고, 어떤 종교적 기만도 쓰지 않았다. 그가 섬긴 황제에게 아부하지 않았고, 황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 나는 그의 경전 안에서 가장 순수한 도덕을 보았다” _볼테르 《철학사전》

 

볼테르와 중국

볼테르는 중국의 문화, 도덕, 정치와 공자의 정치철학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했고 진심으로 그 숭고함에 탄복했다. 과학, 기술면에서는 유럽을 높게 평가하고 문화, 도덕, 정치면에서는 중국을 높게 평가함으로써 당시 극과 극을 달리던 중국 비방과 찬사 사이에서 균형 잡힌 중국관을 유럽인들에게 보이려고 애쓴 측면이 보인다. 볼테르의 중국사랑은 《중국의 고아》라는 희곡에서 절정을 이룬다. 14세기 원나라 기군상의 작품 《조씨 고아》를 모티브로 해서 살짝 분위기를 바꿔 무대에 올린다. “나는 오랑캐와 대비된 중국인의 예절을 묘사하려고 힘썼다. 매우 재미있는 사건들이라도 예절을 그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영예와 덕성의 개념을 고취하는 경향이 없다면 그저 게으른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고아》 는 18세기 문예계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당시 유럽인들은 중국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보여주는 그대로 믿었다. 하긴 볼테르조차도 중국에 대해 잘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파리에서 처음 공연된 이래 유럽 도처에서 셀 수 없이 무대에 오른다. 볼테르는 희곡 서문에서 ‘이성’이 아니라 ‘가슴’을 삶과 행동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볼테르가 데카르트 계열의 합리주의에서 인간적 감정을 중시하는 영국, 중국식 경험주의로 바뀌었음을 토로하는 말이었다.

 

왜 다시 공자인가

중국이 공산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공자는 영(靈)의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문화대혁명 때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물론 지금 공자는 중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공자 이미지로 도배했다. 장이머우 감독은 공자와 제자 3,000명이 대나무 책을 들고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공자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공자철학은 현재 파탄에 처한 서구 합리주의를 대신할 대안철학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100여 년에 걸친 계몽운동 덕에 유럽의 힘은 급신장했다. 하지만 유럽 사상계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기점으로 공자철학과 경험론을 버리고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류의 합리주의 사조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을 뿐이다. 이성을 신격화하고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격하, 억압하는 합리주의는 그에 내장된 과학적 인간지배와 자연정복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파탄을 맞게 됐다.

공자철학에서 인간은 ‘인간의 벗’이고 ‘자연의 손님’이다. 보편적인 생명애와 공감의 정치철학이 깔려있다. 따라서 서구의 경험론과 손잡은 공자철학을 통해 균형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한국철학, 정치철학, 동서양철학의 내공이 깊은 두 학자의 사료(史料)에 근거한 치밀한 글쓰기를 통해 17, 8세기 중국과 유럽의 이모저모를 그려볼 수 있다.

 


이 북리뷰는 칼럼니스트 쎄인트의 책 이야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saint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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