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칼럼

학교 내 총격 사건, 그리고 미국이 겪고 있는 폭력성과 공포

작성자
purecore
작성일
2022-09-19 19:10
조회
631

  아이나 학생이란 단어는 총, 살인과 같은 단어와 같이 쓰일 일이 별로 없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분명히 그랬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삶에서는 아이가 총을 잡고 있는 광고 장면이 등장하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총격사건을 대비해서 모의 훈련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채 열 몇 살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 반자동 소총 같은 무기를 들고 자신이 다녔거나 또는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들어가 무작위로 총을 쏘아 댄다는 것이 일반인 뿐 아니라 부모로서는 생각하기에 너무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 부모들 중 누군가는 가해자인 아이의 부모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가 총을 쏘았다는 걸 알게 된 후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Virginia Tech 버지니아 텍에서 대량학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조승희를 보며 당시의 한인 부모들은 내 자식이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만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았던 아이가 여덟 살의 나이에 부모와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았던 과정을 들여다 볼 수록 다가오는 가슴 서늘함이 어느 한인 부모들에게도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총격 사건을 일으켰던 아이들의 삶과 성격을 분석하여 글을 쓴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인 Peter Langman피터 랭먼 은  가해자 아이들의 유형을 Psychopathic Type 정신병질적 유형, Psychotic Type 정신증적 유형, Traumatized Type 정신적 외상 유형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 이 세 유형에 속했던 총격 가해자 아이들은 각각의 이유로 인해 타인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하거나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왜곡하기에 이른다. 발달 과정에서 사람의 외면적 행동과 내면의 감정을 연결하고 유추할 수 있는 능력, 소위 Mentalization 정신화하는 능력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 상태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극도의 불안정의 상태를 만든다.

둘째로, 이들의 특징은 존재 자체에 대한, 삶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갖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음에 대한 분노, 자신의 근본적 결함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에게 계속 고통을 주었던 세상에 대한 분노는 그들의 내면을 지배한다.

세째, 이들은 매우 취약한 자아와 자존감으로 인해 외부의 자극에 대해 극도의 예민함으로 반응한다. 환경이나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자극을 내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자아의 건강한 역량도 심리적 공간도 없다. 수치심, 시기심, 그리고 즉각적인 공격성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네째로, 이들은 자신의 신체적 약점이나 사회적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열등감과 수치심이 크고, 이러한 이슈를 남자다움과 힘의 문제로 해석한다. 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남성적 힘과 폭력으로, 그리고 그것을 가장 손쉽게 실현하게 해주는 실제적 도구로서의 총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총격 사건을 일으켰던 아이들은 영화나 미디어를 경험하거나 게임을 할 때 특히 강력한 집착과 몰입도를 보였다. 이들은 내면 세계와 외적 현실 사이의 transitional experience 중간적 경험에 머무를 수 없었고, 모호해진 현실과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시나리오를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총격 사건을 대하는 누구든 왜, 어떻게 이런 아이들이 생겨나는지 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유독 이런 폭력성이 만연하는 이유를 묻는다. 그래야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이를 적용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미국 문화와 집단 정신이 우월주의와 과대해진 자기 이미지에 젖어 있기에, 겸손하게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받아들이고 구체적으로 해결책을 적용해 가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역사학자였던 Alexis De Tocqueville 알렉시 드 토크빌의 말처럼 미국인들의 우월함의 자기 이미지는 exceptionalism 예외주의라고 부를 만 한 것이었다. 미국은 건국과정 뿐 아니라 이후 전쟁을 통해 세계 최고로서의 국가 위상과 힘, 경제력을 갖게 되었고 이는 미국에게 군사력을 넘어 정치적, 도덕적 우월함까지 확신하게 하였다. 

군사력이 이상화되고 국가적 우월주의와 결합하면서 미국인들의 심리내면에 폭력이나 무기 사용이 미화되거나, 폭력을 사용해서 결국 승리하는 강한 영웅에 대한 집단적 동경이 자리잡아 왔다는 분석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또한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영화, 음악, 및 온 오프라인 게임의 내용에 드러나는 폭력성은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디어의 폭력성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 인간의 내적 환상과 외부 현실 사이의 transitional space 중간 영역에서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를 잡고 점차 현실과의 경계를 무디어지게 한다. 심각한 것은 실제로 현실에서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강한 스트레스 반응과 반감을 보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폭력의 이미지에 길들여진 사람은 폭력에 매료되거나 폭력을 미화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내의 교육, 의료, 경찰, 사법 시스템에서 폭력성의 문제를 보이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치료하거나 처벌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가운데서도 학교 총격사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러한 아이들이 특별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 늘 함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서는 안될 문제이다. 늘 악마나 범죄자를 추격해서 싸우고 죽여서 승리해야 하는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들처럼,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한 답이 있을 수 없다. 총을 쏘기에 이르는 그 아이와, 꿈에라도 다칠까 두려워하게 되는 내 아이는 그렇게 엄연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 아이”도 나의 아이와 다르지 않다. 

 

  총기 판매의 엄격한 규제 및 개인별 총기의 안전한 보관은 우리 모두가 꼭 이루어 가야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항상 아이들의 관심사와 마음 상태를 살피고 대화해야 한다. 우리 아이만 심리적 문제가 없다는 것은 학교 총격 문제에 아무런 해결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 말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Reference

Klebold, Sue (2017),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he Columbine Tragedy, New York, NY: Broadway Books

Langman, Peter (2010), Why Kids Kill: Inside the Minds of School Shooters, New York, NY: The St. Martin’s Griffin

Neroni, Hilary (2000), The Men of Columbine: Violence and Masculinity in American Culture and Film, Psychoanalysis, Culture & Society, 5(2): 256-263

Peterson, Jillian & Densley, James (2021), The Violence Project: How to Stop A Mass Shooting Epidemic, New York, NY: Abrams Press.

Summers, Frank (2016),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Glorification of Violence, Psychoanalytic Inquiry, 36(6): 488-496 

Summers, Frank (2017), Fear and Its Vicissitudes, International Forum of Psychoanalysis, 26(3): 186-192

Taxman, Jeffrey (2016), Gun Violence in America – A Tri-Vector Model, Applied Psychoanalytic Studies, 13(2): 1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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