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현미와 백미를 충분히 불려서 건져두고 잤다.
돌솥을 달궈서 기름 조금 두른 후 다진 돼지고기, 다진 마늘, 소금, 후추 넣고 달달 볶는다.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 잘 익은 김치를 넣고 함께 볶다가 물기 뺀 쌀을 넣고 참기름 휘 두른 후 1분 정도 볶는다.
쌀의 색이 조금씩 변하면
다시마 우린 물을 쌀이 잠길 정도로 자작하게 붓고 끓이다가
콩나물 얹고 20분 정도
약불로 밥을 한다.
맛간장, 고춧가루, 다진 파,
참깨, 참기름, 참치액 젖 조금
넣고 섞어 양념장 만든다.
따끈한 김치 솥밥에 양념장
얹어서 든든한 한 끼.
오늘은 친정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77세 생신이다.
엄마는 해방둥이셨고
광복 2일 후 태어나셨다.
외할머니는 그 옛날에 한국무용을 전공하신 분이었는데 평생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시고 7남매를 유모를 두어 키우셨다.
늘 조깅과 스트레칭을 하고
계시던 외할머니는 딱 한 가지
자녀들에게 신경 쓰신 부분은
공부 한 가지였다.
그런 외할머니와는 반대로
친정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모두 결혼한 후에도 " 오야, 내 새끼"
하시면서 볼을 비비고 궁둥이
툭툭 쳐주시고 그랬다.
엄마는 6살 때 6.25 전쟁도 겪으셨는데 피난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 주시곤 하셨다.
내가 중학생 시절까지도 엄마는 만약에 전쟁이 날 경우를 대비해서 ( 그때는 실제로 간첩도 많았고 남북관계가 몹시도 불안하던 시절) 작은 배낭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과 상비약, 손수건 등을 넣어서 식구수대로 준비해 두셨다.
가끔 공습경보 같은 사이렌이
웽~ 울리면 우리는 하도 교육을 받아서 학교에 있다가도
한달음에 집에 와서 그 배낭을 메고 도망갈 준비를 했었다.
그 사이렌 소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두근거리고 무섭다.
또 우리 삼 남매가 대학에 다닐 때는 아침마다 기도해주시고 속삭이시던
말씀은 " 아빠가 공무원이신 걸
기억해라."였다.
그 말씀은 곧 "나가서 데모하지 마라. 아빠 잡혀가신다."와 같았다.
그렇게 야무지고 반듯하고
빈틈없던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4개월 만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시고
아빠를 따라 천국에 가셨다.
그야말로 세상 소풍을 끝내고.
내 생일 한 달 뒤쯤 찾아오는 엄마 생신이 늘 쓸쓸하고 아프다.
남편은 그걸 눈치챘는지
매년 엄마 생신 때는 길게 휴가를 내어 여행을 계획했는데 이제 비행기 타기가
힘드니 가까운 곳이라도 데리고 나간다.
어제 강화에 다녀온 것도
그 때문 이리라.
웃음이 많았던 엄마 덕분에
나도 웃음이 많으며
엄마 닮아 계획적이고 야무지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감사하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무더운 8월에 태어나셔서 봄빛이 한창인 5월에 천국 가신 우리 엄마가 굉장히 보고 싶은 아침이다.
이 레시피는 29년차 주부 명랑엄마의 아침일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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