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다시 한번 톰 행크스

작성자
장광현
작성일
2022-12-08 20:02
조회
162

 

apple TV+ 영화 - 핀치 FINCH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두 명의 톰 형이 있습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영화를 찍으려면 전투기 정도는 직접 조종을 해야 성이 풀리는 열정의 화신 톰 크루즈와, 어리숙한 듯 인간미가 넘치는 연기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톰 형도 있죠.

톰 크루즈, 마이클 잭슨, 마돈나, 마이클 조던, 코카콜라가 미국의 화려함 그 자체이던 20세기 끝자락에, 청춘스타답지 않은 순박한 연기로 오히려 눈에 띄던 배우 톰 행크스의 최근작 핀치(FINCH)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처음 톰 행크스라는 배우를 알게 된 건 영화 빅(BIG, 1988)을 통해 였습니다. 말썽쟁이 소년이 축제에 설치된 신비로운 기계에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자 그 소원이 이뤄지는 한 편의 동화 같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톰 행크스가 성인의 몸을 가진 어린아이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여 재미도 있었지만, 완구회사 사장과 바닥에 설치된 거대한 피아노 건반을 밟으며 연주하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남았죠. 이후 그의 행보에는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좋은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필라델피아(1993), 포레스트 검프(1994),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캐스트 어웨이(2000) 등 톰 행크스는 흥행과 연기력 모두를 잡은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흐른 세월만큼 그의 얼굴을 덮은 덥수룩한 흰 수염이 눈에 익어가자, 그의 영화 역시 지루한 듯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특히나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다빈치 코드' 시리즈물은 원작의 매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연기를 보여 개인적인 실망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의 실망이었는지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뒀으니 제 평가에는 대중성이 결여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그의 영화를 보지 못하다가 apple tv+에서만 볼 수 있는 톰 행크스의 영화가 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의 범람으로 가입해야 할 곳이 많기도 하지만 떨어져 사는 가족끼리 십시일반 하면 안 될 것도 없겠죠. 제 오랜 기쁨인 맥주와 간단한 마른안주를 주섬주섬 준비하고 TV 앞 리모컨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듯한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넘기는 에일은 제가 편한 곳에 앉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영화는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종말을 맞은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흔한 아포칼립스의 설정을 따라가지만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존자인 핀치가 엔지니어라는 사실이죠. 핀치는 자신이 일하던 풍력발전소에서 애완견 한 마리와 함께 나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개인 도서관도 만들고 비록 캔 요리지만 술 한잔과 곁들일 정도의 여유는 부릴 수 있죠. 하지만 이것은 전부 핀치의 노력에서 만들어진 아슬아슬한 행복입니다. 이 생활이 유지되려면 사람들이 떠난 도시에서 홀로 생필품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이상고온현상과 피부를 금방 태워버리는 자외선이 외출 자체를 두렵게 만들지만, 엔지니어답게 특수 방호복을 만들고 버스를 개조하여 탐사를 통한 생필품을 얻습니다. 그것도 WALL-E 같은 귀여운 탐사로봇과 함께 말이죠.

그러나 핀치는 이처럼 혹독한 조건이 가득한 낮에만 외부 탐사를 떠납니다. 밤에는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이 폭도로 변해 위협이 될지 모르기에 낮동안 나가는 탐사에는 늘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는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가 보여주는 감정선과도 흡사한데, 윌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면 핀치는 좀 다릅니다. 다른 생존자와의 접촉 자체를 두려워하죠. 그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데 같은 사유로 핀치는 자신과 애완견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형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래밍을 통해 로봇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요소를 가르칩니다. 이른바 로봇 윤리를 말입니다. 어느덧 우리는 터미네이터의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쟁에도 로봇이 활용되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로봇을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면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드론과 사족 보행 로봇이 대표적인 예가 될 텐데, 기술이 인간을 집어삼키면 안 되겠죠. 아이작 아시모프는 런 어라운드(run around)라는 SF소설에서 로봇이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서 기록한 적이 있는데 핀치의 프로그래밍도 이것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해를 입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중 예고 없이 찾아온 태풍으로 거처가 위험에 빠지자 핀치는 아버지가 머물던 샌 프란시스코로 자신만의 가족(강아지 1, 로봇 2)을 이끌고 떠나게 됩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시선이 분산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늙고 지친 한 엔지니어와 로봇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로봇은 그 존재의 이유가 자신과 자신의 강아지를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지만, 어느새 자의식이 생기고 조물주인 핀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합니다. 무엇인가를 알아가고 배우면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로봇을 보며 핀치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자신이 만든 로봇이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자 통제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껴 화를 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의 감정 단계를 그대로 경험하며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보입니다. 인간 같은 로봇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핀치는 이런저런 계기로 조금씩 로봇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명령만 하던 핀치는 점점 자신의 이야기와 속마음도 털어놓으며 그들의 관계는 보다 돈독해집니다. 영화는 이렇게 그들의 목적지인 샌 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려갑니다.   

기계는 과연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인간은 로봇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후자는 이미 전쟁에 로봇과 팀을 이뤄 참전했었던 미군의 사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싸워왔던 로봇 파트너가 전쟁 중 기능 고장으로 폐기되자 큰 슬픔에 빠져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기사를 통해 말이죠.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별개로 인간의 마음을 기계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알 수 있게 되어도 그 또한 무서운 일이겠죠. 영화는 로봇이 학습을 통해 인간의 마음, 즉 핀치를 이해하고 중요한 순간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자못 감동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A.I가 학습한 감정이 과연 인간이라는 복잡한 유기체를 얼마나 잘 이해할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두려움은 알 수 없거나 예측이 안 되는 대상에게서 오나 봅니다.  

 마지막 톰 행크스의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그래. 톰 행크스는 원래 이런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내가 이 배우를 참 좋아했어.'라고 새삼스레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의 늙고 지쳐 보이는 몸보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무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혹시나 다른 분들의 평가는 어떨까 찾아봤더니 기대보다는 더 박하네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냐만 새로움을 추구하는 관객에게는 조금 부족했던 영화였나 봅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톰 행크스를 찾아 영화를 볼 저 같은 사람은 많을 겁니다. 12시까지 월드컵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좀 길어 보이는데, 그사이 영화 한 편 어떨까요?               







                 

*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이 인간과 더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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