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정보

미국에서 한국 환자 대하기 - 치과 공포는 이렇게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04 11:07
조회
625

시애틀 닥터오의 치과 스토리

 

 

얼마 전 병원 하나를 더 인수했다. 아무 생각 없던 우리는 70이 넘으신 지인의 연락을 받고 여러모로 우리의 스케줄과 맞아떨어져 일을 진행하게 됐다.

 

남편과 나는 막연히 병원 하나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부부가 둘이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환자에 대한 견해와 치과에 대한 철학이 약간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얼굴을 붉히고 싸우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이 병원은 50프로 이상이 한국 환자였다. 미국에서 치과 의사가 된 한국인 친구들끼리 그런 말들을 했었다. 다른 인종에 비해 똑똑한 한국 사람들이 많은 치과 병원에서 일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고. 나와 남편도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는 있었지만, 인생이 생각한 대로만 되지 않았다. 싫지는 않았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치료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아니 오히려 우리가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그렇기는 하지만, 엄청난 소신을 갖지 않고 미국에 사는 한국 환자들만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미국에서 치대를 졸업한 한국 사람들은 한국말이 가능하다 해도 치과에서 쓰는 용어들을 한국어로 바꾸어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병원 내 직원들 중 한국어 능통자가 단 한 명도 없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된다. 환자 치료뿐 아니라 예약 및 수납 등 기타 제반 설명까지 의사가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 혼자 일인 삼 사역을 하게 된다면 그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해 환자와 의사에게 여러모로 큰 부담이 된다. 이것뿐이랴. 치과의사는 환자들의 통증과 두려움을 상담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과 수업을 듣지 않았어도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해결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감당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 환자분들의 특징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그들은 똑똑함은 물론 주체성이 강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의사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자가 진단은 영순위가 된다. 그들은 치아 정기 검진도 종종 거르고 오랜만에 나타나 부러진 이, 썩은 이, 흔들리는 이들을 들이밀며 고쳐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통증이나 불편함이 없으면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치과를 방문하지 않는다. 십분 이해한다. 미국에 정착해 사는게 녹록치 않으니 치과가는 것 쯤은 사실 뒷전이 되는게 뻔하다.

 

오래간만에 행차하신 환자분들은 치과를 친근한 사랑방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치과 치료는 안중에도 없고 미국에서 사는 그들의 애환과 고민거리들을 의사에게 늘어놓으며 다음 환자들이 밀려 있는데도 의사의 뒷 가랑이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오래간만에 왔으니 얼마나 반갑고 할 말도 많을까 싶다. 이런 상황이니 나긋나긋한 의사들은 한국 환자분들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아이같이 순수하다가도 점점 길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들보다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기 세게 잘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젊은 한국 환자들은 거의 해당되지는 않지만, 주로 베이비 부머들인 60세 이상인 경우 잊지 못할 에피드가 많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른이라기보다 더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적인 언사로 의사에게 엄포를 놓기도 하고 우는 소리로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며 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한다.

 

전쟁 후, 지금과는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가방끈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극강의 생존력과 더불어 간단한 영어 몇 마디와 함께 미국에서 그들의 삶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들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내로라하는 직업으로 성공을 이루었다. 열심과 성실로 일궈낸 자신의 찬란한 영광을 자식들에게 모두 넘겨주고, 거칠고 피곤했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자식들은 대학 진학, 직업 전선, 결혼 등으로 이미 출가한 지 오래고, 소통의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그들은 배우자와의 대화도 어색하다. 그러니 한국말이 통하는 마음 넉넉한 의사들이라면 그들에게 신문고로 적격이다.

 

말이 많아지는 그들의 문제는 대부분 의사의 지침을 따르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치아를 발치하고 그다음 날, 아프다며 예약 없이 병원으로 들이닥친다거나 전화로 노발대발을 시전 한다. 그리고는 왜 이렇게 아프냐며 우는 소리, 싫은 소리를 한다. 이를 뽑았는데 그다음 날, 안 아플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는 진통제를 복용하라는 권유를 따르지 않았다. 자신의 통증이 의사 때문이라는 듯 온갖 불편함을 호소를 하지만, “진통제 드셨어요?”라는 물음에 지침을 따르지 않은 자신이 떠올라 금세 꼬리를 내린다.

 

인생 경험이 짧은 의사들이 한국 환자를 상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백이면 백 눈물 콧물 다 빼고 병원을 그만둔다. 예전 주인 분이 여러 번 우리에게 말하셨다. “한국 환자들 쉽지 않아. 여럿 울고 나갔어!” 그러면서 여자 의사들은 이 병원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다며 나에게는 여기서 일할 생각도 하지 말라며 언질을 주셨다. 그분에게 여자 의사들은 마음이 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여럿 울고 나갔다는 그 여럿에 여자 의사들이 많았을지도.

 

어쨌든 그들은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말이 많다. 치아 발치든, 임플란트든, 신경치료든 어떤 치료에 앞서 그들의 말은 끝이 없다.

 

그러다가 “혹시 겁이 나세요?”라고 물으면 아무 대답이 없다. ‘아차차, 그래 치료에 겁이 났구나!’ 너무도 대범하고 목소리 큰 그들에게 치과 공포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지만, 이내 치료의 안전성과 용이함을 설명을 해 준다.

 

얼마 전 남편이 흔들리는 이를 발치하러 온 할아버지 환자가 한 시간을 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혼이 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정작 이를 뽑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렸다. 환자는 “벌써 끝났어요?”, “네! 별 것 아니죠? 이렇게 쉽게 끝나는데 할아버지 말씀이 많으셔서 한 시간 반이 지났어요!” 라며 환자에게 핀잔을 줬지만, 자신도 너무 했다 생각했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고 했다.

 

결국 말이 많고 의사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치과에 대한 공포였다. 공포와 연관된 모든 치과 관련 방침이든 지침이든 싫은 것이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을 대하기 힘든 것은 치과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것. 치과 공포는 사실 누구에게나 있다. 어떤 한 인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할 말이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피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공포의 순간을 맞이하여 공포스럽지 않다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야 치료가 된다.

 

나는 물 공포가 있다. 모든 스포츠에 흥미와 취미가 있지만, 유독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수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를 따라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뜨거운 온탕에서 발을 헛디뎌 잠깐 동안 죽을 뻔한 적이 있고, 중 2 때 전교생이 수영 교습의 목적으로 수영장으로 소풍을 갔을 때, 수영 코치의 호루라기에 맞춰 물에 잠수하던 순간 나는 물속으로 그냥 빨려 들어가 버렸다. 대학교 1학년 때, 봉사활동 뒤풀이로 바닷가를 놀러 갔는데, 흥에 취해 감정을 못 추스르던 선배 오빠들이 나를 물속에 집어넣다 빼는 장난을 했다. 그때 나는 물이 귓속, 콧 속, 폐 속, 머릿속까지 짜디 짠 바닷물이 거친 소금이 되어 온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내었다. 그 이후부터 물에 대한 공포심은 더 증폭됐다.

 

물 공포를 극복하려고 수영장을 여러 번 찾았다. 일부러 코와 귀를 막고 잠수 연습을 했다. 물속에 있는 나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생긴 공포심이니 물속에 나를 아예 잠가 버려도 괜찮다는 것을 뇌 속에 집어넣으려 한 것이다. 그러기를 몇 번 하고 나니 아주 많이 극복이 되어 이제는 물에 잘 뜨기도 하고 수영도 개헤엄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치과 경험이 많지 않은 나이 드신 한국 환자 분들이나, 어릴 지라도 치과와 좋지 않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더 많은 경험을 위해 정기 점검은 물론 스케일링을 위해 더 자주 치과를 방문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오면 일은 더 커진다. 공포스럽다고 느껴졌던 대부분의 모든 치과 치료가 그렇지 않음을 경험하면 치과 공포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부드럽게 하는 치과 의사를 찾는 것은 기본이겠다.

 

환자에게 문제가 많으면 돈도 많이 벌고 좋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환자의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치료하고 나서 환자가 6개월에 한 번 정기점검과 스케일링을 받으며 큰 문제가 없이 편안히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보람될 수가 없다. 반대로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 들이고도 관리가 되지 않아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환자들을 마주하면 어깨가 축 처지고, 그런 날은 잠도 잘 안 온다. 새로운 환자들은 언제고 다시 생긴다. 굳이 스스로 자원하여 병을 키워 치과 의사에게 소위 돈을 갖다 바칠 필요는 없다. 기존의 환자들이 치과를 찾고 공을 들이면 오래도록 잘 유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아무쪼록 세계 치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개 치과 의사로서 모든 환자가 치과 공포를 물리치고 치과와 친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시애틀 닥터오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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