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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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처지는 내가 살아왔던 인생 공식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28 01:44
조회
389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16화, 에필로그)

 

뒤늦은 나이에 문과생이 무슨 치과의사 공부를 하냐면서 모두가 의심했다. 비웃었고, 믿지 않았지만, 나는 미국에서 유학을 한 10년 차 치과 의사가 되었다. 치대 공부를 하면서 남들보다 두 세배로 힘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20대 후반을 보냈다. 잘 모르면,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고, 교수님 방으로 음료수나 작은 디저트 같은 것을 사서 교수님께 뇌물 아닌 뇌물도 드리고, 그 좁은 교수님 방에 세네 시간씩 죽치고 앉아 공부를 하다가 질문이 있을 때마다 교수님께 지속적으로 물었다. 그 덕에 교수님과 친해졌고, A를 맞았고, 치대 대학원 입시 원서 제출용으로 좋은 추천서도 받았다.

 

미국 유학생들에게 시민권 있는, 혹은 재산 있는 남자와 결혼을 추천했지만, 나는 낯선 내 앞에서 쌍절곤을 돌리며 뒤돌려 차기를 하는 희한하고 재정이 넉넉지 못한 유학생 남자를 선택해 결혼했다. 가난한 유학생 커플의 작은 아파트에서는 쥐와 바퀴벌레가 출몰하고, 카펫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고, 비 오는 날은 공동묘지에서 시체들을 씻고 내려온 물이 발에 닿을 때에도 그 시간들을 즐겼다. 그때 우리가 소유했던 것을 즐기며, 젊음을 만끽했고, 우리의 해학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다.

 

방이 하나 있었던 작은 아파트에서는 방이 있어서 좋았고, 학교와 가깝게 살며 남들보다 더 값싸게 월세를 내는 것에 감사했고, 거실과 부엌이 있다는 게 감지덕지해 남편과 어깨동무를 하고 거실과 방, 부엌을 오가며 산책을 즐겼다. 삶이 힘들었지만, 금요일 밤에는 아무 음악이나 틀어놓고 남편과 개다리 춤도 추고, 마빡이 춤도 추었다.

 

생활비가 빠듯했지만, 방이 하나가 더 늘어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우리는 더 넓어진 아파트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더 길어진 동선으로 새로 이사한 아파트 안을 자주 산책했다. 거실과 부엌이 더 넓어져 더 비싼 월세가 나가는 아파트였어도, 주변이 깔끔하지 않아 문제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면전에 두고 가난한 동네에서 산다고 코웃음을 쳤지만, 우리는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했고, 재정이 부족해도 월세 한 번 밀리지 않았음이 기적 같았다.

 

우리는 처한 상황을 비난하거나 잠깐잠깐 짜증을 내기도 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고, 주로 웃어넘기려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즐기고 느꼈다. 사과를 두 개 살 수는 없었어도 한 개는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고, 매 학기 학비를 걱정해야 했지만, 그때마다 나타나는 도움의 손길들 덕에 단 한 번도 학비를 못 내서 수업을 듣지 못한 적도 없었다. 치과 의사 면허 시험비 삼천 불이 없어서 등록도 못하고 있을 때, 착한 동기생이 선뜻 자기 신용카드로 시험을 대신 등록해 주었고, 어떤 날, 통장에 3불 밖에 없었을 때도 있었지만, 넘치면 넘쳤지 쌀이 없어 굶었던 적도 없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영화 같은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부족했지만, 빛을 품은 사람들에 의해 때에 따라 넉넉히 채워졌고, 힘겨웠지만, 작은 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나니, 모르는 사이에 삶이 점점 더 풍요로워짐을 경험했다. 재정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남편과 나는 졸업하자마자, 바쁘게 돌아가는 대형 치과에 취직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연봉으로 각각의 병원에 기록을 세웠고, 둘이 버는 돈이 너무 많아져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축복도 경험했다. 병원을 떠날 때는 매니저들이 우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었지만, 돈을 더 준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삶을 향해 돈을 등지고 또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갔다.

 

모든 사람들이 안 된다고 부정할 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갖춘 병원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까지 기도하면서, 계속 도전했다. 일 년이 넘게 걸릴 거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6개월도 안되어 병원을 찾아 이제 시작한 지 4년이 되어 간다.

 

주변의 선배들은 병원을 인수하고 3년에서 5년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또 그들의 부정적인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인수한 병원의 모든 스태프들과 안에 갖추어진 모든 것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들이, 또 그것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를 실천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동안 쌓였던 남편과 나의 학교 대출금을 비롯하여 지인들의 현금 빚, 부모님의 빚까지 다 청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병원을 인수하고 은행 대출이 안 되니 1-2년 안에 집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병원 인수 후, 다시 6개월 만에 은행 대출금으로 집을 장만하고, 그들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서울 가장 한복판의 값비싼 아파트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중산층 가정이 장만할 수 있는 꽤 넓은 2층 집이다. 이거면 됐다. 이제는 남편과 함께 위아래로 집 안 산책을 다니며 푸르렀던 젊은 날을 추억한다.

 

올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돈 걱정보다는 바이러스 걱정으로 주변 병원들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주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응급환자들을 받았다. 그 덕에 팬데믹 기간 동안 어떻게 주의를 하며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지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환자들은 자기 닥터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동네 환자들이 우리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스태프들에게는 일을 나오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 월급을 챙겨줄 테니 코로나가 두려우면 일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집에 있는 게 더 싫다며 감염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와 짐을 함께 나눠졌다. 그게 감개무량해 나라에서 지원받은 돈으로 직원들이 일한 날짜보다 더 많이 챙겨주었다. 그 이후, 직원들은 우리와 일하는 것을 더 행복해했고, 새로 들어온 환자들은 더 많은 새 환자들을 데리고 왔다.

 

이건 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지나온 길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능력이 좋아서? 운이 좋아서? 아니, 내가 할 수 있었다면,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부정적인 말, 걱정과 두려움에 힘을 싣지 말고, 지금 기뻐하고 감사해라. 걱정과 두려움의 구름을 걷어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쁨과 감사를 실천하라. 내 인생에서 불가능 앞에 명쾌한 답은 항상 기쁨과 감사, 그리고 희망을 품은 기도였다.

 

나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18세 때의 큰 교통사고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 2년 전 그간의 직업병인 디스크 증세와 겹쳐 목이 안 돌아갔고, 가슴, 목, 등 통증으로 매일 열이 오르는 몸살과 두통을 앓아야 했다. 아이를 품어야 할 아기집에는 병이 가득 들어차, 5년 전에는 5시간의 긴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여러 번의 시험관을 거쳤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유독 좋아하지만, 하늘은 우리에게 아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미국에서 유학을 한 치과 의사라고 하면, 재력 있는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화려한 인생일 것 같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서 과거의 고통과 통증에서 조금씩 회복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 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다.

 

잘 살아보려는 데 잘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삶이다. 빛나게, 찬란하게, 완벽하게 살고 싶지만, 그런 삶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피투성이라도 살라.’라는 구약 성서의 말이 있다. 살 수 없을 때에라도, 살고 싶지 않을 때에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인생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지금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희망의 기도로 살아보자. 분명히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다.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시애틀 닥터오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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