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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도 추워요 - 마당에서 겨울을 맞이한 백미와 현미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09 14:16
조회
214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6화)

 

아이비도 무사히 서울로 갔고, 백미와 현미도 잘 지내고 있었지만 마당에서 지내고 있는 강아지들의 임보처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쉬울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날이 추워지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보리까지 중형견 세 마리와 실내 생활을 하는 게 상상이 잘 되지도 않았다. 공을 들여 큰 집을 만들어 주긴 했는데, 개들이 그 집에 들어가는 걸 썩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현미는 밤마다 집에 들어가서 잤고, 깔아 둔 담요도 얌전히 건드리지 않았지만 백미는 웬만한 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깔아 둔 담요는 걸핏하면 끌어내 조각을 냈다. 현미까지 합세해 물어뜯고 흔들며 작은 조각을 만들면 흙바닥 위에 그걸 깔고 누워 있었다. 자기 몸의 1/3 정도밖에 얹어 놓지 못하는 작은 조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 분명 폭신한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그걸 가만히 깔고 앉아 있지는 못하고 찢어놔야 직성이 풀리는가.. 장난감도 몇 번 사다 줬지만 뜯으면 솜이 나오는 장난감은 개들이 가지는 흥미에 비례해서 마당이 순식간에 솜으로 뒤덮이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나는 출근을 하고, 원데이 클래스를 하러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그걸 치우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여하 간에 백미와 현미는 날로 통통해지고, 털도 복슬복슬해졌는데, 개들의 털이 복슬복슬해진다는 건 그만큼 겨울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얘기기도 했다. 백미와 현미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10월 초만 해도 낮에는 반팔 반바지를 입었고, 모자를 챙겨 써야 할 만큼 햇살도 따사로웠지만 날이 갈수록 해는 짧아졌고, 쌀쌀한 밤이 길어지고 있었다.

 

가을 보다는 여름이 더 가깝게 느껴지던 계절


산책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아침에는 보리 산책만 하고 나가기도 바빴고, 저녁에도 퇴근하고 보리 산책하고, 저녁 먹으면 금세 깜깜해졌다. 아직 산책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는 일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고,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꼭 배변을 하러 나가야 하는 보리의 산책과 달리 아무래도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렸다.

 

군데 군데 떨어져 있는 솜 뭉치들


처음에는 나 혼자 한 명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다. 백미나 현미는 많이 말랐을 때도 보리보다 1-2kg은 더 나갔는데, 산책을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당기는 것도 심했고, 나 혼자 한 마리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동네가 한적하기는 해도 골목을 나서면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서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에 더 부담스러웠다. 돈이 조금 넉넉해서 목줄이나 리쉬를 튼튼한 걸로 미리 장만했다면 덜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까? 갑자기 개 세 마리를 데려오면서 사료와 간식은 물론이고 산책 용품과 장난감 등도 필요했는데, 기왕 살 것 좋은 것, 그리고 넉넉하게 사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빠듯한 형편상 한 가지를 살 때도 가성비를 따지느라 에너지가 두 배로 들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하고 있던 목줄은 너무 튼튼했지만 빨리 바꿔주고 싶어서 보리가 안 쓰는 여분의 목줄을 해 줬는데, 백미와 현미한테는 체급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백미와 현미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다 큰 것 같았지만 아직 한 살이 안 된 시기였기 때문에 강아지들은 조금씩 계속 자랐고, 힘도 세졌다. 게다가 마당에 묶여 있으면 사람이 다가가면 목줄이 당기건 말건 뛰어올랐고, 산책할 때도 열심히 당기다 보니 버텨 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쓸 목줄이 없을 때쯤 아이비한테 해 주려고 무무네 가족이 주문하신 목줄이 저렴하고 튼튼해 보여서(아이비한테 쓰기엔 작아서 새것을 주문했어야 했다) 백미와 현미 것도 주문했고, 현미는 가기 전까지 잘 썼지만, 백미 것은 가기 전에 또 망가뜨렸다. 주로 목줄에 달려 있는 연결 고리가 계속 당기는 힘을 못 버티고 벌어지거나 버클 부분을 씹어 쓸 수 없게 됐다. 여하간 예쁘고 튼튼한 것을 사 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수준에서 만족했고, 하네스도 적응시켜 주고 싶어서 튼튼하고 가벼운 것으로 한 개를 주문해서 백미와 현미가 번갈아 쓰게끔 했는데, 가기 전까지 거부감 없이 잘 썼지만 비행기 타고 가는 동안 크레이트 안에서는 답답해서 다 뜯어버리지 않을까 싶어 해 주지 않았다. 비행기 안이 춥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힘든 시간 동안 몸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없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옷도 안 입혔는데, 그건 지금까지도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부분이다. 먼 길을 가는데 달랑 목줄 하나만 해서 보낸 것이 마음 쓰였고, 간식도 켄넬 안에만 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스틱 타입 몇 개만 넣었는데, 켄넬 바깥에 단단히 고정해서 몇 개 더 보낼 걸 싶기도 하다. 후회도 되고, 아쉬움도 남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백미와 현미는 시애틀에서 가족을 만나 잘 지내고 있지만 정말 떠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예상하거나 기대할 수 없었다. 떠나고 도착해서 임보 가족을 만나고 입양이 결정되기 전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출국이 결정되기 전까지 주위 사람들도 우리가 평생 백미와 현미를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고 하니까. 다들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끝까지 백미와 현미가 좋을 가족을 만날 거라고 생각한 것은 나뿐인 듯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가족을 찾아 주어야 했다. 파트너인 용이 조차도 평생 우리가 개 세 마리를 길러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데, 장기적으로 마당에서 개를 기르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집 안에서 중형견 세 마리를 기르는 것도 내 능력 밖이었고, 현실적인 제약도 따르는 일이었기에 내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얼마가 걸리든 강아지들에게 좋은 가족을 찾아주는 것.

 

그렇지만 내 조바심과 다짐과는 별개로 세상에는 안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 안 되는 일이 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최악의 상황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겨울이 다 되도록 임보 문의조차 없는 상황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다. 날이 점점 추워져서 2-3달 만이라도 단기 임보처가 없을지 계속 홍보를 해 봤지만 없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털을 바짝 깎아놓은 현미가 더위와 모기에 노출되는 게 걱정돼서 UV 차단되는 올인원을 사서 입혔는데, 날은 바쁘게도 흘러가 어느새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백미, 현미와 함께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을엔 다행히 비기 많이 오지 않았지만 밤에 바람이 많이 불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비가 온 날에는 개들이 진흙 투성이가 되어서 웃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개들이 집 안에 있으면서 뽀얗고 예뻐서 당장 데려다 키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분명 지내는 환경은 안쓰러운 게 맞는데도 개들 표정이 하나도 안쓰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불쌍해 보이거나 정말 예쁘거나 둘 중 하나도 충족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문제였지만 뾰족한 해결 방법은 없었다. 집 안에 데리고 들어올 엄두도 안 났고, 그렇다고 애들에게 덜 행복해 보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아이러니였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마당에 묶어 놓으니 줄이 풀리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차를 타고 집 골목을 들어서는데 하얀 개 한 마리가 골목 끝에 있었다. 처음엔 그게 백미나 현미일 거라고 생각은 못 하고, 웬 개가 또 떠돌아다니나 라고 잠시 생각했는데 이내 그게 우리 집 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그게 백미였는지, 현미였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우리 차를 보고는 너무나 반갑게 달려왔다. 백미와 현미가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움직이는 차도 무서워하지 않았고, 우리 차에는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다. 차에 대한 기억이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형성이 돼서 그랬을 것이다. 보리가 그랬던 것처럼, 차를 타면 늘 좋은 곳에 간다는 기억이 생겼던 것 같다. 그게 병원일 때도 있었지만, 어쩌면 마당에 묶여 있던 백미와 현미는 우리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리보다도 더 차에 타 있는 시간 자체를 편안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긴 병원에 가도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주사를 맞아도 맞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으니 외출하면 즐겁기만 한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외출한 동안 줄을 풀고 나와서 이웃에 사는 오빠가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용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애월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백미가 풀려서 다른 친구 강아지를 만나 놀고 있는데 주변에 있는 아저씨들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 다 멀리 있어서 바로 갈 수가 없으니 오빠가 백미를 일단 급하게 차에 태웠다고 한다. 타라고 했더니 바로 탔다고 했던가.. 평소에 차 타는 걸 좋아하는 애들이라 다행이었다. 바로 돌아왔더니 백미는 캠핑팩에 연결된 줄에 묶여 해맑은 표정으로 맞이해 주었다. 어디에서 뒹굴었는지 엉망진창이라서 카페에 있다가 같이 와 준 친구들이랑 같이 씻기고 말렸다. 씻기는 김에 현미도 씻었는데 바로 다음날에 비가 왔다고 한다.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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