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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여름 - 다시 개들을 구하려고 하다.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02 15:10
조회
184

계절은 다시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2화)

 

올해는 많이 덥고 습하다. 제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폭염이라는 곳이 많다. 가뭄도 심했는데, 장마철에는 잠잠하더니 최근 들어 비가 많이 왔다. 장마 때는 밤중에만 폭우가 쏟아지듯 무섭게 내렸는데, 최근에는 한 이틀 정도 내내 비가 내렸다. 좀 개는가 싶다가도 여우비가 내렸다. 햇볕은 쨍쨍한데 바람이 불어 비가 사선으로 내렸다. 날이 갰다고 보리랑 산책을 나갔다가 처마에서 몇 번이나 쉬어갔다. 꼭 동남아에 오는 스콜 같았다. 한국에도 몇 해 전부터인가는 스콜 같은 비가 많이 내렸지만.

작년 여름은 그렇게 많이 덥지 않았다. 그 전해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훨씬 덜 덥다는 대화를 여러 번 했다. 태풍도 없었다. 그래도 비가 많이 내리거나 유독 덥다 싶은 날에는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지만 여름이 거의 다 지나갈 동안 강아지들이 있는 살고 있는 예전 집 동네로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강아지들이 어찌 지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했지만,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고, 몇 마리가 남아 있을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거나 혹 우리가 아끼던 어미 개가 없으면 어떨지 어떤 상상을 해 봐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강아지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러면서도 직접 가 보기에는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기적 이게도. 그 근처를 지날 일이 있는 용이에게 부탁해 들러봐 달라고 했다. 내가 제주에 오기 전부터 개들을 봐 오고, 돌봐 주고, 내가 제주에 온 봄부터 개들을 함께 산책시키고, 중성화를 시켜주고, 보리를 데려와 입양처를 찾아주기로 결정하고, 보리를 입양 보내기 전에 아이비와 새끼들을 데려와 한 달을 돌봐주다가 결국 소동 끝에 다시 출산한 지 한 달이 된 어미와 새끼 다섯 마리를 돌려보내기 까지. 그 후에는 내내 마음 아픈 겨울과 봄과 여름을 지내는 동안 함께 해 줬던 동지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도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전해 온 소식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조금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소식이었다. 여름 내내 혹시 아이비가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했었다. 덩치는 크지만 온순하고 착하기만 한 암컷 개가 주인 할아버지에게 말 뿐인 사랑을 받으며 간간이 던져지는 음식 쓰레기를 먹으며 무거운 쇠줄을 매고 나무 아래 작은 그늘에 의지해 벌레들로부터 시달리고 있을 것도 걱정이었지만, 그 아이가 그곳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께가 뻐근했다. 여름은 개들에게 무서운 계절이다.

아이비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고, 새끼는 한 마리가 남아 있다고 했다. 사진도 찍어 왔는데 확인하기가 겁이 났다. 작은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던 하얀 개는 익숙하지만 반년 만에 나타난 사람에게 희미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원래라면 더 반겨줄 텐데 왠지 기운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새끼는 한 마리만 남아 있다고 했다. 각각 메밀, 콩이, 쌀이, 시루, 파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던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작은 새끼 강아지들의 곰실곰실한 촉감이 떠올라 괴로웠지만 그래도 한 마리가 남아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잘하면 다시 아이비와 새끼 한 마리를 구해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큰 개라고 해도 두 마리 정도는 구조해서 입양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그 일을 혼자 시작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서 SNS에 나름의 각오를 정리해서 올렸다. 강아지들을 데려다주고 나서는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 오랜만에 올리는 소식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었다.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람도 있어 다시 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조금 잦아들었다. 역시 감당도 되지 않을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감정을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덤덤하게 필요한 일들을 해 내고, 성과도 있는데 나는 걱정하고 슬퍼하기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나에 대한 불신이 자꾸만 커지고 있었다. 그런 감정을 떨쳐내려고, 각오를 다지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글을 올린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혼자 감당하는 일을 나만 알아서 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는 편이 나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인데, 내가 도움을 구하는 일 조차도 무서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큰 도움은 보리의 형제인 무무를 입양하신 분에게서 받을 수 있었다. 무무를 입양한 무무 엄마는 우리가 살았던 곳을 숙소로 잡아 신혼여행을 오셨다가, 골목에 방치 상태로 지내고 있는 아이비와 무무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껴 혹시 온라인에 이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하고 찾아보다가 내가 쓴 글을 발견하고 연락을 해 오신 분이었다. 나로서는 정말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경험이었는데, 그때도 보리를 입양 보내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글을 계속 올리던 중이었지만, 브런치에 쓴 내 일기 같은 글을 보고 연락을 해 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그 글을 읽고 연락을 주신 분이 마치 은인 같았다. 그리고 그분은 실제로 아이비와 무무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고, 산책을 시켜 주기 위해 일부러 제주에 오셨고, 그다음에는 무무를 입양하시기도 했다. ‘누구 한 마리라도 구하자’라는 마음이 커서 보리나 아이비나 무무 가운데 누구를 가족으로 맞이할지 고민도 하셨지만 먼저 무무를 입양하기로 하셨다. 그리고 결국엔 무무와 아이비 모두 그 집의 가족이 되었다.

무무 엄마는 내가 오랜만에 올린 SNS 글을 보고 연락해 적극적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아마 그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여름은 맞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허둥지둥하며 무엇부터 해야 할지, 한 걸음 한 걸음을 버거워하고 있을 때, 일의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주고, 도움을 요청할 곳의 리스트를 만들고, 두세 번 더 연락하는 것까지 무무 엄마가 해 줬다.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제대로 답변을 받지 못했던 단체와 연락이 닿아 개들이 지내는 곳을 보러 단체 대표가 방문을 해 줬고, 내가 연락하고 있던 면사무소 담당자와 함께 할아버지를 설득해 새끼 개 두 마리를 먼저 데리고 나오고, 어미가 있는 곳을 정비해 주는 것까지 동의를 얻었다.

한 마리인 줄 알았던 새끼 개는 두 마리였는데, 언제 두 마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너무 솔직하게 쓰고 있는 것 같군) 두 마리라는 걸 알고 당황했던 생각만 난다. 용이는 내가 걱정하는 게 싫어서 두 마리가 있는 걸 보고도 한 마리라고 얘기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다시 개들을 구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애써 떨치려고 했을지도 모르고. 나도 새끼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마냥 반갑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두 마리라고 하면 우리 집 마당에라도 잠시 데려와 보살피면서 입양처를 찾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세 마리라고 생각하니 마당 어디에 세 마리를 함께 두고 보살필 수 있을지 막막해졌다. 그래도 다섯 마리 새끼들 중에 두 마리가 남아 있다는 건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리 그곳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슬픈 현실이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가끔 가슴이 따끔거리게 한다.

 

-다시 개들을 구하려고 마음먹고, 백미와 현미를 구조해 해외 입양 보내기까지의 여정을 적으려고 합니다.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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