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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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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의 시작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0-28 13:30
조회
177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2)

 

영어 발표 이후 한풀 기가 죽어지내던 와중에 대규모 내과 컨퍼런스가 대강당에서 열렸다. 컨퍼런스는 실험적으로 영어로 진행이 되었는데, 외국에서 공부한 누나가 학생 대표로 발표를 하였다. 원어민 같은 발음으로 유창한 영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자, 누나의 영어 실력에 압도된 것처럼 아무도 코멘트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를 혼냈던 깐깐한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전 발표자까지는 매번 영어로 질문을 하던 교수님이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내심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교수님의 영어실력이 내가 주눅 들 정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영어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하면 나도 영어로 교수님을 눌러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영어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인터넷에서 영어 공부법에 관한 검색을 하던 중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발견하였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이하 영절하)라는 책에서는 5단계로 영어 학습 방법을 제시하였다. 6개월만 따라 하면 아기가 모국어를 배우듯이 영어를 학습하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중 1단계는 1시간 분량의 영어 테이프를 선택해서 잘 들릴 때까지 계속해서 듣는 것이었다. 심플한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뜻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듣기만 하면 된다니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나에게 딱 적합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듣다 보면 영어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영어 듣기와 시험공부를 병행하였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한 가지 공지를 하였다. 본과 4학년 학생들 중 세 명을 선발하여 미국 병원으로 한 달간 실습을 가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하였다. 병원 실습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미국에 가는 것이 영어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절하의 저자가 독일 유학시절 독일어를 마스터했듯이 나도 미국 생활을 하면서 강제로 영어에 노출이 되면 자연스럽게 귀도 트이고 말도 트일 것만 같았다. 교학과에 지원 절차를 문의하자 영어 시험 성적을 제출하면 성적순으로 선발을 하겠다고 하였다.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지원을 하는데 영어 성적순으로 선발을 한다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급하게 토익 시험을 신청한 후 영절하 방식으로 토익 리스닝 문제들을 한 달간 매일같이 들었다. 리딩 점수는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영절하 덕분인지 리스닝 점수는 꽤 괜찮게 나왔다.

 

점수의 총점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경쟁자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병원 실습을 지원하려면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실습 기간이 인턴 근무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미국 병원에 가게 되면 올해는 인턴 지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 또한 인턴을 미루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은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이 좀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후 인턴을 하기로 결심을 한 후 실습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결국 지원 학생은 나밖에 없었고 다행히도 실습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되었다.

 

2011년 초 국가고시는 무사히 끝이 났다.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나는 미국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선진 문물을 접하러 간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들떴다. 한편으로는 미국에 가서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흔히 말하는 국뽕 마인드가 차올랐던 것 같다. 내과 실습 때 발표와 질문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그래도 남는 건 내과 지식밖에 없었다. 나름 가장 자신이 있었던 신장 내과 실습을 지원하였고, 비장의 무기인 파워 내과도 함께 챙겼다.

 

한 달 남짓의 준비 기간 동안에도 영절하의 1단계 방법을 계속하였다. 충분히 들었다는 생각에 2단계인 받아쓰기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굳이 지겨운 받아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영어 환경에 노출되면 무의식에 잠재돼있던 영어 실력이 발휘될 것 같은 기대도 있었다. 아이가 어느 순간 말을 하듯이 그렇게 나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의학 공부와 동시에 들었던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영어를 들으면서도 집중을 잘하지는 못하였다.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는걸 계속 듣고 있자니 10분도 집중을 해서 듣는 것이 힘들었다. 나름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도중 출국 날짜는 다가오게 되었고 27살의 나는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병원 신장내과로 실습을 떠나게 되었다.


 

이 에세이는 브런치 작가 정신적 자유 연구소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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