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인턴인가 노예인가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24 00:19
조회
377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8)

 

2014년 5월에 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하였다. 한국 대학병원의 수련과정은 총 5년으로 이루어진다. 1년의 인턴 기간 동안에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등 임상과목 중에 총 12개 과에 임의로 배정되어 한 달씩 로테이션을 하는 수련 과정을 거친다. 그 후 원하는 전공과목에 지원하여 합격을 하게 되면 해당 임상과의 레지던트가 되어 4년간의 수련기간을 거친 이후 전문의가 되게 된다. 원래 인턴은 3월에 시작을 하지만, 나는 군 복무로 인해 5월부터 총 10개월 동안 인턴을 하였다. 3월에 일을 시작한 다른 동료들은 이미 병원 시스템과 각종 술기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나는 콜이 올 때마다 매번 처음 하는 새로운 일들이었기 때문에 동료 인턴들과 간호사님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해결을 해나갔다.


인턴은 비위관 삽입, 동맥혈 채혈, 상처 소독, T-tube 교체 등 각종 술기와 시술 및 수술 동의서 받기, 수술방 준비와 어시스트, 심정지 환자의 가슴 압박, 심전도 검사 및 판독 의뢰, 영상 판독 의뢰, 사망 환자 라인 정리, 항암제 믹스 및 주사하기, 호흡곤란 환자 엠부 짜기 등등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업무 외에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모조리 도맡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의국 정리하기, 입원 환자 차트 만들기, 아침 컨퍼런스 준비하기, 의료장비 옮기기, 미비된 서류 정리하기, 식사 주문 및 식사 후 정리하기, 서류 복사, 논문 데이터 입력하기, 각종 개인 심부름 등등 하여튼 뭐가 됐든 위에서 시키는 일은 다 해야만 했다. 매달 수련을 받는 임상과에서 인턴 성적이 매겨졌고 그 인턴 성적이 시험 성적과 더불어 레지던트 지원 시에 주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더라도 참고 일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24시간 근무 후 24시간 오프가 주어지는 응급실 근무를 제외한 다른 과들은 인턴을 하면서 휴식시간이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대개는 일주일에 한차례 한나절 정도 오프가 주어졌고, 나머지 6일은 24시간 내내 당직실에서 생활하며 근무를 하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인턴들에게는 삐삐를 통해 업무 지시가 전달되었는데 낮이고 밤이고 삐삐는 끊임없이 울렸다. 사실상 일주일에 최소 120시간은 실질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주당 88시간 근무 제한을 규정한 전공의 특별법이 내가 인턴을 할 당시에는 논의 중에 있었다. 당시 수련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교수님은 전공의들이 일주일에 88시간만 근무를 하려면 당직을 하는 날에는 아예 잠을 자지 말라고 하였다. 당직 다음 날에는 낮에 정규일을 이어서 해야 하기 때문에 36시간을 연속으로 휴식 없이 일을 하란 얘기였다. 애초에 당직시간에는 수면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새벽 몇 시가 됐든 일이 생기면 가서 해야 하기 때문에 요령껏 길어야 3-4시간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가 다였다. 나는 이때 인턴이란 존재가 비용 절감을 위한 착취 대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착취를 가장 앞장서서 종용하는 존재가 내 동료이자 선배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는 레지던트들 중에도 88시간 근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88시간 근무 제한이 생기면 현재 당직을 도맡아 하고 있는 저년차들이 고년차가 되어서도 당직 근무를 나눠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후에 레지던트를 하면서 저런 과정을 직접적으로 거치게 되었다. 인턴, 레지던트 1년 차, 레지던트 2년 차 때까지 병원 당직실에 쭉 살면서 낮이고 밤이고 개인생활이 없이 근무를 하였다. 그리고는 3년 차가 되자 전공의 특별법으로 인해 레지던트를 마칠 때까지 여전히 주 1회씩 당직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1,2년 차는 주중에도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3년 차가 돼서 업무량이 늘어난 것이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줄곧 업무의 합리적인 분배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여 왔었다. 적절한 휴식시간이 없이 일 년 내내 일을 한다는 것은 수련이 아닌 착취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미국 병원에서 의료진 간 또는 의료진과 환자 간 상호 존중하는 모습을 경험하고 온 뒤라 더욱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 같다.


내가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내 아래 세대에서는 그 관행이 끊어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성숙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사회에 나온 이후 여러 상황에서 본인의 작은 이권을 지키기 위하여, 또는 편의를 누리기 위하여 서슴없이 아랫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모습을 경험하여왔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뿐만이 아니라 정신과 진료를 하면서도 이러한 문제로 인해 우울이나 불안을 겪는 환자분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가족 단위부터 시작하여 여러 조직과 시스템 안에서 계급주의적인 서열화와 착취가 아무 죄의식 없이 일어나고 당연시된다. 개인이 조직에서 아랫사람일 때는 착취를 견뎌내야 삶을 지속할 수가 있고, 윗사람일 때는 아랫사람을 똑같이 착취해야 본인의 이권을 유지할 수가 있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비 존중적인 계급주의적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 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불합리한 사고방식과 시스템에 개인이 저항을 하는 것은 절대다수의 이권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민, 비혼, 출산율 저하 등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사회현상들은 연속적인 착취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다양한 무의식적 시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인턴을 하는 동안에는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인턴이 끝난 후 레지던트에 지원을 하였지만 전공의 선발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탓에 탈락을 하고 말았다. 아쉽긴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을 하였고, 다음 해 지원을 위한 시험 준비를 하기 전까지 다시 영어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미국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인턴을 시작하기 전 영어 리스닝과 스피킹 실력의 불균형을 극복 못하고 한계에 부딪힌 원인이 실전 경험 부족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상황에서 스피킹 연습을 한다면 쉐도잉, 영어학원, 스터디 모임에서 느꼈던 단점을 모두 보완하여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에세이는 브런치 작가 정신적 자유 연구소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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