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칼럼

아이들의 트라우마Trauma 와 꿈의 이미지

작성자
purecore
작성일
2021-04-23 04:13
조회
505

아이들의 트라우마와 꿈의 이미지


 


 며칠 전 마리Marie가 몇 달 만에 한의원에 치료받으러 왔습니다. 그녀는 40대 초반의 유럽계 여성으로 10대 후반의 딸, 10살 난 아들과 남편이 있습니다. 가정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 치료를 받으러 올 때도 늘 무거운 마음으로 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몇 달 동안 한의원에 들르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깝던 차였습니다. 마리의 첫째 딸이 중증의 정신발달지체를 겪고 있어 또한 힘들어했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온 가족이 COVID-19에 감염이 되어 고생했고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좁은 모빌하우스에 사는 네 가족이 심각한 감염질환을 앓고 병원을 오가며 후유증까지 겪고 있다니 부모들 뿐 아니라 아이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생각하면서 제 마음이 아득해 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년 이상을 이 세계적인 전염 질환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야 했던  마리의 10살 난 둘째 아들은 우울증을 보이고 한번씩 격한 분노를 표현하며 감정조절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COVID에 감염이 되어 온 가족이 입원했을 때, 이 어린 아이는 부모가 죽거나 아니면 늘 돌봄이 필요했던 허약한 누나가 죽기라도 할까봐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입니다. 가족이 없어져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상황을 보면 가족의 질병, 사고 혹은 죽음과 같은 큰 사건으로서의 트라우마가 있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가정의 여러 양육 조건과 환경 속에 발생하여 누적되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일단 현 시대에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사건으로서의 트라우마만 나열해 보아도 실로 엄청납니다.  육체적, 정서적 혹은 성적인 학대나 방치, 가족이나 학교에서의 폭력, 심각한 교통사고, 자연 재해, 부모나 혈육 및 중요한 애착의 대상에게 벌어지는 우연한 사고 및 폭력이나 죽음, 그리고 전쟁과 테러를 겪고 난민이 되기도 하는 등 수많은 상황에 우리의 아이들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은 성인들 또한 노출되어 있는 현실적 상황이지만, 어린 아이들일 수록 의식적 자아가 강력한 무의식적 정서나 환상으로부터 안정적인 경계를 갖지 못하고, 객관적 외부 현실과 내면적 현실 사이의 구분이 덜 명확하므로 성인보다 트라우마로 인해 훨씬 원색적인 공포나 불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힘든 불안과 공포가 아이의 자아와 인격을 해체시킬 듯이 위협하게 되면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 강력하고 원형적인 방어가 움직여 아이의 정신이 해체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이러한 방어체계는 아이들의 꿈 속에 강력한 보호자나 공격자의 이미지들로 나타나 더 이상의 현실 접촉을 막고 정신을 해리dissociation시키면서 일차적인  생존을 유도한다는 점을 융 분석가인 도널드 칼쉐드Donald Kalsched는 적고 있습니다. 내적인 환상의 영역이 아이들에게 충격적이고 무서운 현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되어주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고통을 일깨워 현실에 대해 기대를 품지 못하게 차단시키는 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이나 그림 작업과 같은 내적 이미지의 표현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이 어떠한 트라우마를 겪었는지, 어떻게 트라우마를 통과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그 당시에 심리치료를 받게 되어 자신들의 꿈을 보고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고, 대개 성인이 되어 아이 때 꿈을 기억하거나 특정한 어린 시기의 트라우마와 상관된 꿈을 가져옵니다.


 


도널드 칼쉐드의 저서 “트라우마의 내적세계The Inner World of Trauma” 에 소개된 환자들의 꿈 중 구스타프Gustav의 사례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학대 받았고 전쟁까지도 겪었던 구스타프는 자신이 12살로 등장하는 꿈을 계속해서 꾸었습니다. 아래는 그 중 하나의 꿈입니다.


 


 “나는 12살쯤이다. 미친 의사가 나를 지하실로 향하는 문으로 밀어 넣고는 뒤에서 수류탄을 던졌다. 나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고서 그는 어떤 흥분이나 감정도 보이지 않았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려고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나는 지하실 문 뒤에 숨어 있어서 다치지 않았고 이제 밖으로 나온다. 나는 쇠문 사이 작은 틈으로 거의 끼일 뻔 하면서 빠져 나온다. 나는 북쪽을 향한 해변을 따라 달린다. 그러다 나는 그 의사가 나를 놓친 것을 알게 되면 차로 얼마나 쉽게 쫓아 올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그는 내가 자신의 미친 환자라고 주장할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가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만 가고자 아주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의사라는, 표면적으로는 치료와 보호의 역할을 담당하는 -부모와도 같이- 인물이 여기에서는 구스타프를 미쳤다고 주장하며 죽이려 합니다. 구스타프의 실제 부모 역시 표면적 보호자이자 실제적 가해자로서 구스타프의 삶에 존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꿈에서 강력한 어둠의 파괴적 힘을 지닌 듯한 의사는 구스타프를 계속 두려움 속에 도망치게 합니다. 다음 꿈에도 그는 12살로 등장합니다.


 


 “나는 심하게 상처 주는 엄마의 말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 나는 여전히 잠에 취한 상태였으나 엄마를 향해 고함지르며 쫓아갔다. 그러나 엄마는 그냥 걸어나가 버렸다. 나는 계속 고함지르며 따라 나갔다. “어떻게 내가 이렇다 할 만한 존재가 될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내 삶을 살 수 있겠냐고?” 그렇게 엄마를 쫓아 다른 방에 들어갔을 때, 미이라처럼 큰 형체 없는 모양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분석가와 12살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중 위의 꿈을 통해 연상하면서 구스타프는 자신이 12살때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유산하고 있던 장면을 예기치 못하게 목격했던 것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흥건히 피 묻은 엄마, 그걸 바라보는 어린 구스타프에게 나가라고 호되게 비명을 질렀던 엄마를 구스타프는 기억해 내었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자신이 임신했다고 알려주었기에 구스타프는 외롭고 혹독한 생활 속에 동생이라는 존재가 생긴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목격한 이 장면은 너무 혼란스럽고 잔혹한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감정과 행동이 가져오는 충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아이의 의식에서 잊혀진 것을 꿈은 내면의 기억으로, 이미지로 담아 낸 것입니다.


 


 실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다룰 때는 무엇보다 부모가 그런 충격적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자신들의 정서와 삶을 추슬러 가는 지가 가장 관건이 됩니다. 아이들은 이를 목격하면서 부모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위로를 얻어 극복이 빨라지기도 하고 혹은 충격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반되는 과정에서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자연적인 현상으로서의 꿈이나 그 이미지들은 정신의 상태를 읽고 치유하는 데에 객관적이고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테세우스가 미로를 빠져나올 때 붙잡고 있었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말입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intinst.edu@gmail.com


425.412.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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