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칼럼

공황장애: 사례 분석

작성자
purecore
작성일
2020-06-15 05:47
조회
699

공황장애: 사례 분석


 


“늘 하던 미팅이었는데 그날 아침에는 갑자기 도저히 갈 수가 없었어요. 아침에 미팅을 가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겁이 덜컥 나면서 식은 땀이 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요. 넥타이가 꽉 조였나 싶어서 풀었는데도 숨이 더 가빠졌어요.”


 


처음 저를 찾아왔을 때 이미 영훈 씨는 일반 내과, 심장 내과, 정신과, 한의원을 거치며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무척이나 지쳐 보였고 제게 오는 것도 많이 두려웠고 애를 써서 간신히 왔노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냐고 묻자, 영훈씨는 공황발작이 찾아 온 날 아침을 그렇게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훈 씨는 40대 후반의 영화제작자로 과거 십여년간 여러 편의 영화제작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사업체를 크게 확장시킨 분이었습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친구와 함께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었고 직원들의 숫자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영화제작과 관련해 투자, 캐스팅, 제작 분야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고 국내외로 여행하는 날이 잦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격이 원래 밝고 신앙심도 깊어서 이런 상황이 나한테 생길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일도 무척 재미있었고 제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긍정적인 면만 이야기하는 영훈 씨에게, 저는 좋은 일이 많았지만 그런 만큼 힘든 일도 있지 않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영훈씨는 동업자였던 친구가 회사 돈을 횡령한 사실을 알게 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친구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할 만큼 신뢰가 컸던 터라 자신이 발견하게 된 사실을 스스로 믿을 수 없는 나날이 길었고 고통이 컸다고 했습니다. 결국 회사 재정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와서야 그 친구를 불러 모든 증거를 내놓고 격하게 심정을 토로한 후에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일은 이미 일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다 정리가 되었어요. 그 일 때문에 제가 지금 공황장애를 겪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영훈 씨의 공황장애가 그 사건으로 인해서만 발생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 충격이 핵심적인 자극이 된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또 의식에서 느끼는 충격이 가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상담의 초기인지라 저는 영훈 씨에게 충격이 되었던 상황에 대해 더 질문하지 않고 현재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를 물어보았습니다. 


 


“잠은 수면제를 먹어야 잘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아니 사실 일어나는 것이 겁이 납니다. 일어나면 결국 회사에 가서 직원들이 일을 잘 진행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미팅을 해야하는데 그런 일들이 너무 엄청난 것으로 느껴집니다. 예전에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불 속에 계속 웅크리고 있어요…일어나서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리려고 하면 식은 땀이 쭉 나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머리가 하얘지고 일어설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그것도 며칠씩 누워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회사요? 제가 거의 안 나가니까 직원들이 적응을 했는지 알아서 처리하고 저한테 컨펌만 받습니다. 제가 아프다고 수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회사 가기가 힘듭니다. 회사에 나가서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쓰러질까봐 겁이 나요. 직원들이 본다면…끔찍합니다… “


 


상담을 계속 진행하면서 영훈 씨의 삶의 흐름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착하고 긍정적이고 모범적이었던 영훈 씨에게는 부정적이고 불안한 요소를 빨리 차단하려는 경향성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매우 우울하면서도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분이었는데, 영훈 씨는 첫째 아들로서 공부도 잘 하고 무던하며 밝은 태도를 보여서 어머니에게 심적인 안정을 주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사업도 성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신앙심도 깊다는 안정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불안이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취약하며 이를 계속 회피해왔다는 것을 영훈 씨는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의 배신이라는 정서적 사건이 현실적인 돈 문제와 함께 발생하게 되었고, 이 문제는 긍정적인 태도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을 불러온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상상치 못했던 상황의 발생은 그동안 자신이 믿었던 세계에 대한 혼란과 두려움을 불러왔고, 감춰진 불안 감수성이 높았던 그에게는 공황장애를 일으킬 정도의 강한 자극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료 과정은 초기에 특히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의식적 성향을 감지하지 못했고, 이미 정신적, 신체적으로 극심한 불안증세를 겪고 있었으므로 모든 과정은 천천히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차적으로 현재의 불안과 공황발작에 대처하는 태도가 중요했습니다. 불안이 밀려올 때 “…하면 어쩌지?”하고 염려로 가득 찬 시나리오를 계속 그리는 것은 불안을 막아보려는 시도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록 불안은 도리어 더 커지고 두려운 상황들은 끝도 없이 생겨난다는 것을, 영훈 씨는 계속되는 경험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 상태를 피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렇게 고통을 겪었는데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불안을 마주하면서 영훈 씨의 공황장애 증상은 훨씬 경감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공포스런 시나리오가 떠오를 때, 영훈 씨는 “이건 상상이고 추측이지 사실fact은 아니야.” 라고 스스로 되뇌이고, 생각을 생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있는 힘을 조금씩 힘겹지만 키워갔습니다.


현재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힘을 조금씩 갖게 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 우리는 그동안 영훈 씨가 정서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억눌러왔던, 과거의 많은 경험들을 더 깊이 이야기하게 되었고, 이는 영훈 씨의 인격이 보다 유연하고 통합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Encounter, Acceptance, and Self awareness


  


  공황장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가까스로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처하기 시작할 때 극복의 계기가 마련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증상을 조금씩 감당할 수 있게 되면, 불안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발견하고 수용함으로써 불안이 더 이상 통제할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장악하지 않도록 자기 인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Dr. SUJIN RHI


한의사(한국(한의 신경정신과), WA), 미국 공인 정신분석가(NCPsyA)


intinst.edu@gmail.com


720.207.8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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