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여행지

시애틀의 하얀 달빛 아래를 걸으며 - Travel to Seattle #1. 시애틀의 낮과 밤

여행기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0-03 13:02
조회
509

미국에 머무는 동안 잘 알려진 관광지도 좋지만 기왕이면 한국에서 가기 힘든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해보다 떠오른 곳이 최후의 개척지 - 개척지라기엔 돈 주고 산 땅이지만 - 라는 별명을 지닌 알래스카이다. 그런데 알래스카는 조지아에서도 대각선으로 반대편이라 멀기도 먼데다, 땅덩어리기 워낙 커서 제대로 보려면 비용도 시간도 만만찮을 터였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이웃들이 알래스카는 크루즈로 가면 싸게 갈 수 있다는 팁을 주었다. 알래스카는 날씨로 인해 5월에서 9월 중순까지만 크루즈를 운행한다. 나는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 올해 마지막 크루즈선의 땡처리 표를 간신히 구했다. 한편, 알래스카 크루즈는 밴쿠버에서 출발해 앵커리지까지 가는 편도 노선과, 시애틀에서 출발해 주노, 스캐그웨이, 빅토리아(캐나다)를 둘러본 후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 왕복 노선이 있는데, 비행기표를 생각하면 아무리 크루즈가 땡처리라도 비용이 크게 올라가기에 나는 둘 중 비행거리가 가까운 시애틀 왕복 크루즈를 택했다. 크루즈 여행은 기항지 근처로 동선이 제한되기에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될 수밖에 없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대로 알래스카의 낯선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크루즈가 시애틀에서 출발하니 기왕 가는 김에 시간을 내어 시애틀도 좀 둘러보기로 했다. 시애틀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로 유명해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하늘이 무척 맑고 기온도 선선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직도 여름처럼 덥고 습한 조지아에 있다가 시원한 시애틀로 오니 손에 닿으면 바스락 하고 부서질 것 같은 바삭한 공기가 무척이나 반갑고 상쾌하다. 나는 시애틀의 아침 첫 일정으로 퍼블릭 마켓을 택했다. 시장 구경은 뭐니 뭐니 해도 활기 넘치는 아침이 제격일 테니까. 퍼블릭 마켓의 상징인 붉은 네온사인을 향해 다가가자 복작대는 사람들 사이로 길게 늘어선 꽃가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농수산물 시장인 줄 알았는데 화훼 시장도 같이 있는 모양이다. 얼음에 파묻힌 신선한 생선들과 싱그러운 꽃들, 아기자기한 공예품 등을 구경하며 시장 골목을 걸으니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출출해진 나는 퍼블릭 마켓 근처의 브런치 맛집 <Biscuit Bitch>에 들러 고소한 비스킷 샌드위치를 우물대며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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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게가 많아 인상적인 퍼블릭 마켓에서는 신선한 농수산물뿐 아니라 액세서리나 헌책들도 판매하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한편 퍼블릭 마켓 바로 앞에는 미국의 커피 문화를 바꿨다는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데, 언제 가도 관광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가게 앞에서 열심히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는다. 다행히 매장 안에 좌석이 없어 무조건 테이크 아웃만 해야 하기에 줄이 길어도 대기시간이 길지는 않다. 한참을 기다려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커피 외에도 스타벅스 유니폼을 입은 곰인형이나 컵 등의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어 스타벅스 충성 고객이라면 즐겁게 돌아볼 만하다. 지금이야 카페가 일상이 되었기에 별로 대단할 것 없이 느껴지지만 스타벅스 이전의 미국에는 커피를 마시러 너도나도 카페를 찾는 문화가 없었다고 한다. 이 작은 가게가 불과 50년 만에 미국은 물론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의 커피 문화까지 바꿔 놓은 것을 생각하면, 스타벅스야 말로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다는 문구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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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에 창업한 스타벅스 1호점은 여전히 50년 전의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사이렌의 디테일한 두 갈래 지느러미가 인상적이다.

스타벅스에서 나와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거리를 돌아본 후 버스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시애틀 근교의 타코마에 도착했다. 타코마의 유니언 역에 내리면 역을 가운데 두고 한편에는 유리 박물관이, 맞은편에는 워싱턴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시애틀의 대중교통은 무척 편리하기도 하고 버스비도 3달러 정도로 미국 치고는 무척 저렴한 데다 2시간 내에는 무료 환승까지 가능해 부담 없이 외곽을 돌아볼 수 있다. 타코마의 유리 박물관은 업무차 시애틀을 자주 방문하는 친구의 동생이 추천한 곳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유리 공예의 제작 과정도 볼 수 있고 어떻게 유리로 저런 걸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신기한 예술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는 흥미 있는 곳이다. 비가 잦은 시애틀이라도 가을만은 예외인지 청명한 푸른 하늘 아래로 쏟아지는 햇살에 투명한 유리 조형물이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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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코마의 유리 박물관. 크지는 않지만 정교하고 아름다운 유리 작품들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나와 워싱턴 대학 캠퍼스를 잠시 돌아본 후 다시 시애틀로 돌아왔다. 남은 일정은 케리 공원에서 도시의 전경을 보는 것인데 시간이 약간 남아 시애틀 공공도서관을 들러 보기로 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고풍스러운 뉴욕 공공도서관과는 달리 아주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인데, 통유리로 되어 있어 사선의 벽과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에너지 효율이 제로에 가까운 통유리 건물을 선호하지 않지만 - 솔직히 극단적인 날씨의 한국에서는 여름엔 쪄 죽고 겨울엔 얼어 죽는 통유리 건물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산유국인 미국에서 그런 것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물 모양의 햇살 사이를 걸으며 도서관 내부를 걷다가, 귀여운 소품들이 가득한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 허기가 져오자 도서관에서 나와 식사를 마친 후 일몰 시간에 맞추어 시애틀 야경을 보기 좋다는 케리 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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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인 디자인의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어 서가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받으며 독서를 즐길 수 있다.

20년 가까이 방영되고 있는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그레이 아나토미>는 시애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화면이 전환될 때 시애틀 야경을 비춰주곤 한다. 케리 공원에 오르자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보았던 것처럼 스페이스 니들과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9월인데도 해가 지기 시작하는 데다 바닷바람까지 더하니 제법 쌀쌀하다. 나는 티셔츠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붉은 하늘이 보라색으로 변해가며 도시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공원에는 시애틀의 야경을 즐기러 모여든 관광객들이 가득해 왁자지껄 했으나 그들 역시 나처럼 이 도시에서의 길지 않은 시간을 즐기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마침 떠오른 둥근 보름달이 화려한 도시에 질세라 더욱 환하게 빛났다. 나는 달을 보며 조용히 소원을 빌고 싶었으나 어쩐지 주변의 소음에 파묻혀 달에 미처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릴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공원을 뒤로 하고 나와 숙소를 향해 시애틀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 좁다란 하늘로 보이는 달이 더욱 탐스럽다. 나는 하얀 달빛 아래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닿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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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리 공원에서 바라본 시애틀의 일몰과 야경. 스페이스 니들과 둥근 보름달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이 글은 브런치 작가 낭만토끼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출처: brunch.co.kr/@asilik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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