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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을 찾아서: 살며 사랑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Chapter.17 2월 유감

작성자
LaVie
작성일
2023-02-28 11:20
조회
599

유감(遺憾) :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오늘은 열두달 중에 날짜가 가장 짧아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가는 세월에 날개를 달아준 것 같이 슥 지나가버린 2월 마지막 날이다.

2월은 입춘이 있어 봄을 시작하는 달이다. 예전에는 집집 마다 대문에 ‘입춘대길’이란 문구를 써 붙여 놓은 집이 많았다. 절기대로라면 겨울은 가고 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춥고 눈까지 내리기도 한다. 봄이 올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땅속에서는 생물들이 다시 살아내기 위해 진통을 이겨내고 어느 순간 새순을 돋아 날 것을 믿는다. 그래서 지금의 추위를 꽃샘추위라고 부르고 겨울과 봄사이를 잇는 간절기라고 부른다. 겨우내 입던 외투가 거추장스러워도 가벼운 트렌치 코트를 꺼내 입기에는 아직은 춥고 매일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부쩍 날씨 예보에 신경을 더 쓰게 하는 달이기도 한 간절기. 그리고 봄을 기다리며 봄 맞이 청소도 해보지만 아직 꽃을 피우기에는 이른,  봄도 아닌 것이 겨울도 아닌 애매한 달, 그저 빨리 지나가고 싶은 징검다리 같은 간절기 일 뿐이다. 마치  완전하지 못해 미숙해서 아픈 손가락 같은 계절이라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만 7세인 8살부터  7세 2월 생까지 입학을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한살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 입학 시기로 인해 빠른 00년 생이란 말이 나오게  만든 한국인만의 특이한 나이 계산법이 생겨났다.

팔남매중에 막내였던 나는 4월생인데 7살에 입학을 했다. 어리광이 가득한 얼굴에 가슴에는 손수건에 이름표를 달고 엄마 손 잡고 찍은 입학식 흑백사진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가기에는 아직 모자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일찍 학교를 보내신 이유는 아마도 많은 자식 농사가 버거워서 여섯살 터울인 막내는 조금이라도 빨리 단축시키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대부분 자녀가 많은 대가족이었다. 그 많은 자식들을 부모가 일일히 돌볼 수 없어도 형제 자매끼리 뒤엉키며,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타기도 하며 자랄 수 있어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 자동으로 클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가장 짧은 시간을 부모와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막내는 어쩌면 나의 부모님에게 아픈 손가락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해도 자식을 겨우 한 두명정도 낳거나 아님 아예 자녀 계획을 하지 않다 보니 인구 절감으로 인한 대책이 시급한 세대를 살고 있지만 그 중에도 아픈 손가락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키우다 보니 충분한 보살핌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 충분히 사랑을 쏟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해서 더욱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내 자식이 마냥 철없는 어린아이였는데 어느덧 성인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자녀를 보면 더욱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그런 자녀들은 인생에서 마치 2월 간절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사춘기도 지나고 나이로는 성인인데 여전히 정체성을 찾고 홀로서기를 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겨우내 얼어붙은 땅속에서 진통을 겪고 이겨내야 새 순을 돋아 내고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는것 처럼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지만 오로시 혼자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의례이고 성인 신고식이 될것이다.

 

그래서 2월은 그저 겨울과 봄사이를 잇는 간절기로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계절이 아니라 생명을 자라게 하는 숭고한 계절이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헬스라이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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