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AI·번아웃에…시애틀 테크 종사자들 '조기 은퇴' 늘어

시애틀 지역 테크업계에서 50대 이상 종사자들의 조기 은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규모 감원과 인공지능(AI) 확산, 치열해진 재취업 시장 등이 맞물리면서 오랜 경력을 쌓은 기술 인력들이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수년간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 주요 기술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일부 중장년층 직원들은 재취업 대신 은퇴를 선택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스티브 오테슨(55)은 올해 회사가 제안한 퇴직 패키지를 받아들이며 조기 은퇴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몇 년은 더 일할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조기 은퇴가 단순한 개인 선택을 넘어 시애틀 테크업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재무설계사 케빈 에스테스는 "기술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은퇴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지 고민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왔다"며 "해고를 겪지 않은 사람들조차 계속 일해야 하는지 재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I의 급격한 발전은 일부 고참 기술인력의 은퇴 결심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엔지니어링 기업 시냅스에서 사업개발 총괄로 근무하다 최근 은퇴한 존 스틸(58)은 "AI를 익히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다"며 "30년 넘게 일한 뒤 또 다른 기술 혁신의 물결을 따라가야 한다는 동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원치 않는 은퇴를 선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소프트웨어 기업 재무 담당자로 일했던 데이비드 바워스는 2023년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100곳이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단 한 차례의 면접 기회만 얻었다. 당시 58세였던 그는 결국 구직 활동을 중단하고 은퇴를 선택했다.
그는 "35년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노동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연령이 재취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조기 은퇴가 모두 경제적 여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65세 이전 은퇴자는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건강보험 비용 부담이 크다.
바워스 부부는 현재 건강보험과 치과보험 가입에만 매달 3천300달러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65세가 될 때까지 의료비로만 수십만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애틀의 높은 생활비도 조기 은퇴자들의 고민거리다.
오테슨은 은퇴 후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레드먼드의 주택을 매각하고 워싱턴주 밴쿠버나 오리건주 힐스보로로 이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업계 종사자들이 높은 급여와 주식 보상 덕분에 다른 업종보다 일찍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지만, 최근의 조기 은퇴 증가 현상은 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미국 직원복지연구소(EBR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은퇴한 미국인 가운데 절반가량이 당초 계획보다 이른 시기에 직장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으로는 건강 문제와 직장 환경 변화, 그리고 경제적 준비 완료 등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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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Alex Martin/AFP via Getty Im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