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갈등 격화에 물가 다시 요동…에너지·소비재·운송비 줄줄이 인상 우려
이스라엘이 6월 13일(금요일) 이란을 전격 공격하면서 장기화된 양국 간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중동 정세 불안은 국제 원유와 금값을 끌어올리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따라 달러 가치도 상승세를 보이는 등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물가로 이미 민감해진 미국 가계와 기업에 또 다른 인플레이션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대규모 관세 조치로 인해 물가 불안이 고조된 상황에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에너지 시장 ‘긴장 고조’…유가 급등
이번 사태 직후 국제유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아직까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이란의 원유 수출이 중단될 경우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란은 세계 주요 산유국 중 하나지만, 서방의 제재로 인해 수출 규모는 제한돼 있다. 그러나 확전으로 인해 중동 지역의 생산 및 수출 흐름이 차단될 경우, 그 여파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ING는 “이란산 원유 수출 중단 시 4분기 원유 공급 과잉 전망이 사라지게 된다”며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현재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13달러로, 1년 전보다 30센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안정세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운송비 상승세 지속…연말 수입 급증도 부담
이미 여러 요인으로 인해 상승 중이던 해상 운송비도 이번 사태로 더욱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현재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에 대응해 홍해 지역에서 공습을 진행 중이며, 이에 따라 화물선 운항 경로가 우회되면서 물류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시행 전 물량을 선제 수입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더해지며 선복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 등 주요 건화물의 운송 수요를 반영하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최근 8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연말까지 수입을 마무리하려는 기업들이 몰리며 운임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의 공격 직후 해운업체 티케이(Teekay), 프론트라인(Frontline) 등은 주가가 급등했다.
소비자 물가 압박 현실화
에너지와 운송비 상승은 곧바로 소비자 물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석유 및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한 제품 생산과 물류비용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 기업들은 가격 인상을 통해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통계를 통해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전체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밝혔지만, 월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는 일부 품목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커피를 수입하는 J.M. 스머커 역시 브라질·베트남산 원두에 대한 관세 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ING는 “재고 여유로 인해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미뤄왔지만, 더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여름철에는 월간 인플레이션 수치가 더욱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의 금리 결정에도 변수로 작용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다음 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있으며, 대다수 전문가들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물가 압력 확대는 연준의 물가 관리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식료품, 에너지 등 필수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연준이 다시 긴축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기업의 차입 부담이 늘고 소비자 신용비용도 증가해 경기 전반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기술주와 유통업종 주가는 13일 하루 동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여행 산업, 의외의 하락세
이례적으로 항공권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가계가 관세 부담을 우려해 여행 예산을 줄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잇따른 항공사고로 인해 항공기 이용을 꺼리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대형 항공사들은 이미 국내선 운항 계획을 축소하고 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달 신용카드 고객들의 항공·숙박 지출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환율 역시 여행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는 주요 통화 대비 10% 가까이 하락해 해외여행 시 환전 손실이 커졌고, 이로 인해 여행 수요가 둔화됐다.
13일 뉴욕증시에서는 주요 항공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중동 정세가 단기간에 안정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이번 갈등은 단순한 외교적 이슈를 넘어 미국 경제 전반에 복합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Copyright@KSEATTLE.com
(Photo: AP Photo/Baz Rat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