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차한잔의 사색 11 - 대통령 죠지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

작성자
손승호
작성일
2008-02-04 12:52
조회
5275






Presidents’ Day를 기리면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기념하기 위하기 위해, 2월의 세 번째 월요일이 프레지던츠데이 (Presidents’ Day)공휴일로 지켜지고 있는데, 이 공휴일의 유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죠지 워싱턴 대통령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날에서 출발했습니다.



1971년까지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생일인 2월 12일과 워싱턴 대통령의 생일인 2월 22일을 양일 모두 연방공휴일로 정해 기념했었지만,  1971년 닉슨 대통령이, 이전의 모든 미국 대통령을 기념하는 한가지 공휴일로 정해, 그 날을 Presidents' Day라고 이름짓고, 날짜도 2월의 세 번째 월요일로 정함에 따라 Presidents' Day가 새로운 공휴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프레지던츠 데이를 처음 기념한 것은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 재임 마지막 해인 1796년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32년 2월 22일에 버지니아 주 웨스트 모어랜드에서 태어났는데,  원래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쓰던 옛 달력으로는 2월 11일 생이지만 그 후 그레고리력이 채택되면서 2월 22일로 된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의 존경받는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의 생일 또한 2월 12일입니다. 링컨의 생일에 대한 공식적인 기념식은 그가 암살된 이듬해인 1865년부터 지켜졌는데, 이날에 행해질 기념연설을 위해서 상하양원이 모였었고, 링컨의 생일은 조지 워싱턴의 생일처럼 연방국경일로 지켜진 것은 아니지만, 여러 주에서 법정공휴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죠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1732-1799)

    미국의 국부



죠지 워싱턴은 자기 자신을 위한  어떤 기념비나 기념건물을 반대했었지만 그의 사후 1885년 로버트 밀스(Robert Mills)에 의해서 설계된 555피트 58인치의 죠지워싱턴 기념비가 수도 워싱턴 DC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32년 2월 22일에 버지니아 주 웨스트 모어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원래 직업은 측량기사였지만 독학으로 전술을 배워 20세 때 버지니아 민병대에 입대하였고,  그 이후 3년 동안 에드워드 브래독 장군의 부관으로서 프랑스 및 인디언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싸웠습니다. 1759년 그는 민병대를 그만 두고 부유한 과부였던 마사 댄드릿지 커티스와 결혼하여 버지니아 주 마운트 버논(현재 관광지로 되어 있는)의 농장주로 정착하였습니다.  그는 민병대 시절 영국 장교들의 오만함에 시달렸으며 농장주로서는 영국의 무역제한 조치로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이 그의 영국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그는 1765년의 印紙稅 법에 반대했으며 1770년 이후에는 영국에 대한 저항운동을 조직하는데 앞장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에 버지니아 대표로 참석, 대륙군의 총사령관에 선출되었으며 1775년 7월 매사츄세츠 주 캠브리지에서 지휘권을 정식으로 잡았습니다. 당시 식민지군은 전투 경험이 없고, 장비가 열악하며, 군기도 서 있지 않았고, 대륙회의 역시 식민지군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워싱턴은 영국군과 정식으로 맞서기보다는 게릴라 전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6년간의 싸움 끝에 1781년 10월 19일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에서 영국군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식민지 내부에서 연방정부 지지세력과 각 주의 자치권을 지지하는 세력간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일단 자기 농장으로 은퇴했던 워싱턴은 다시 공직에 돌아와 대륙회의를 주재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1789년 4월 30일 당시의 수도였던 뉴욕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으며,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국가를 단결시키고 국내외에서 새 정부의 권위를 확립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1792년 역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재선된 워싱턴은 연방정부의 권한강화에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국내 여러 세력의 단합에 노력하고, 헌법을 실제 정치에 반영시키는 한편, 여러 나라와의 국교를 조정하는 일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견을 달리한 A. 해밀턴과 T. 제퍼슨을 각 각 재무장관과 국무장관으로 기용하여 국내 재정정책의 수립과 외교정책의 정비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1796년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민주주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 하였던, 죠지 워싱턴은 북미합중국을 창건한 국부로서 미국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으며 자유를 애호하는 세계 각국의 민주 인사에게서도 추앙을 받는 인물입니다. 1796년 9월 17일 대통령 직에서 퇴임한 워싱턴은 1799년 12월 14일 마운트 버논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워싱턴은 미국 건국의 기초를 굳건하게 만든 인물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 1809 – 1865)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상에서 멸망시키지 않기 위하여 우리 앞의 위대한 사업에 몸을 바칩시다.” 이말을 하였던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1809년 2월 12일 켄터키주(州) 호젠빌 출생입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우체국장이 되었고,  1837년 변호사가 되어 스프링필드에서 개업하였으며, 1834∼1841년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847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미국-멕시코전쟁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인기가 떨어져 하원의원직은 1기로 끝나고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1850년대를 통하여 노예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로 크게 고조되자 정계로 복귀,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고, 민주당측의 브리겐리지와 더글라스 2명의 분열된 후보들을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당선과 함께 남부 7개주가 합중국을 이탈하여 남부연합국을 결성하게 된 이유는, 링컨은 남부의 노예를 즉시 무조건 해방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앞으로 만들어질 주(州)는 노예제를 실시할 수 없음을 강력히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 링컨은 "나의 최고의 목적은 연방을 유지하여 이를 구제하는 것이지, 노예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4월 남부군의 공격으로 마침내 남북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황은 처음에는 북군에게 불리하였으나, 1862년 9월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 폐지를 예고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유명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불멸의 말을 남겼으며,  전쟁 중인 1864 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그랜트 장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승리가 계속된 것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1865년 4월 9일 남군 사령관  리 장군이 애포매턱스에서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함으로써 남북전쟁은 종막을 고하였습니다. 전쟁이 종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관대한 조치를 베풀어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바랐으나, 남군 항복 2일 후인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관람 중 남부인 배우 J. 부스에게 피격, 이튿날 아침 사망하였습니다.



링컨은 현명한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나라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남북전쟁 직전, 노예제도에 대한 지역 이해 차이로 미국이 둘로 갈라질 운명에 직면했을 때 입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인간의 평등한 권리에 대한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북부에스는 노예 제도의 불합리성이 제기 되는 반면, 농업이 기반인 남부는 노예 제도가 사라지면 당장 경제기반이 붕괴될 상황이었습니다. 노예제도로 인해 나라가 남북으로 갈릴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과연 링컨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 까요? 그는 전쟁을 치르더라도 나라를 통일시키고 노예를 해방하는 것이 미합중국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의 이런 예지력과 결단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아마 남부는 후진 농업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며 북부는 산업만 발전시킨 결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겪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링컨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었던 진실과 평등, 정의와 사랑, 그리고 남을 비판하기 보다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믿음과 말씀 묵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랐던 사람도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링컨이 기용한 국무장관 스탠튼은 링컨이 대통령에 입후보했을 때 극심한 욕설로 방해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저격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이 스탠튼이었습니다. 그는 링컨 대통령의 침대옆에 서서 그의 최후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제 그는 시대를 초월한 인물이 되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는 미국 땅에 살면서 이 땅의 역사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오늘의 부강한 미국을 이끄는 정신적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신참 이민자 그룹인 우리 한국 동포들은 선발 주자들인 타 민족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정착해 나갔는지 그 비결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 해답이 미국의 역사 속에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정신적 뿌리는 청교도주의, 개척정신과, 실용주의라는 3대 사상 일 것입니다. 또한 워싱턴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이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공통 분모가 바로 미국의 정신적 기초를 이룬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워싱턴과 링컨의 이야기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공통분모는 그들의 정직성입니다. 초등학생들의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워싱턴이 남의 도끼를 쓰다가 잃어버렸을 때 정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했다는 이야기나 링컨이 남의 책을 빌렸다가 못쓰게 되어 정직하게 고백하고 다시 갚아 준다는 이야기들은 이 사회 구석 구석에서 정직성을 얼마나 핵심적 기초와 구심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아브라함의 별명은 어네스트 에이브 즉 정직한 아브라함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종교도 그 기본이 정직성입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도 정직하다는 가정하에 이 사회 구조가 짜여 있고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 점에서 우리의 모델이 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의 평생 구호는 정직과 근면이었으며, 한국인들이 그렇게 살도록 계몽하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안국동에 있는 한 친구를 방문했을 때 그 집의 아들이 아주 예의 바르게 인사를 잘 하자 너무 감동한 도산 선생이 그 아이에게 일전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돈을 찾아보니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당황한 그는 다음 주에 너희 집에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으니 그 때 꼭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추격이 너무 심했기에 그의 동료들이 그 집을 다시 방문하는 일을 만류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다시 가서 체포 당하면 독립에 지장이 있을 지 모르지만 어린 소년에게 내가 한 약속을 어기면 그 아이가 거짓을 배우게 될 것이요. 거짓된 아이에게 나라를 물려주는 것 보다 차라리 독립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정직한 아이들에게 우리 나라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집을 다시 방문하는 모험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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